제2장 근본불교의 성립
2-1.부처님의 깨달음(1)
보리수 아래의 깨달음
근본불교의 성립에 대해서 알아보려면 보리수 아래서의 부처님에관해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 적당 할 것이다. 그러나 이에 관해 아함 경전들은 그다지 많은 것을 말하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아함경전은 주로 부처님의 설법읋ㅎ 집록한 것인데 보리수 아래서의 부처님은 그때까지 법을 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면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성취한 부처님은 어떤 생각을 하며 무엇을 하고 계셨을까. 다행히 남전(南傳)대장경 소부경전(小部經典)에 들어있는 《자설경(自設經)》(1.1)은 그때의 일을 이렇게 전해주고 있다.
나는 이렇게 들었다. 어느 때 비로서 정각(正覺)을 나타내신 부처님은 우루벨라(優 樓毘羅) 네란자라(尼連禪) 강가에 있는 보리수 아래에 머물고 계셨다. 그때 부처님은 한번 결가부좌한 그대로 7일 동안 해탈의 기쁨을 누리면서 앉아 계셨다. 7일이 지난 후 초 저녁경(오후8시경) 부처님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 다음과 같은 순서로 연기(緣起)의 법을 생각해 내셨다.
‘이것이 있으면 이것이 있다. 이것이 생기면 이것이 생긴다. 즉 무명(無明)에 의해서 행(行)이 있다. 행에 의해 식(識)이 있다. 식에 의해 명색(名色)이 있다(譯註: 名色:name and body, individual being, nâmarûpa. 즉 名稱과 內體. 個體로서의 인간. 단 인격적이라든가 자아라고 하는 것은 이에 해당하지 않음) 명색에 의해 육입(六入)이 있다. 육입에 의해 촉(觸)이 있다. 촉에 의해 수(受)가 있다. 수에 의해 애(愛)가 있다. 애에의해 취(取)가 있다. 취에 의해 유(有)가 있다. 유에 의해 생(生)이 있다. 생에 의해서 노(老). 사(死). 수(愁). 비(悲). 고(苦). 우(憂). 뇌(惱)가 있다. 모든 괴로움은 이렇게 해서 생기는(滅) 것이다.
부처님은 모든 일의 연유를 알고 그때의 감흥을 게(偈)로 읊었다.
진지한 열성을 다해 사유했던 성자에게
만법의 이치가 확실해 졌을 때
그의 의혹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유인(有因)의 법을 깨달았기 때문에.
이어서 《자설경(自說經)》(1.2)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는 이렇게 들었다. 어느 때 비로소 정각을 이룩하신 부처님은 우루벨라 네란자라 강가에 있는 보리수 아래에 머물고 계셨다. 그때 부처님은 다시 한번 결가부좌 한 co 7일동안 해탈의 기쁨을 누리고 앉아 계셨다. 7일이 지난 뒤 한밤 중 10시부터 새벽 2시 사이 부처님은 삼매(三昧)에서 나와 다음과 같이 거꾸로 연기의 법을 생각해 내셨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다’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이 사라진다. 즉 무명이 사라지면 행이 사라진다. 행이 사라지면 식이 사라진다. 식이 사라지면 명색이 사라진다. 명색이 사라지면 육입이 사라진다. 육입이 사라지면 촉이 사라진다. 촉이 사라지면 수가 사라진다. 수가 사라지면 애가 사라진다. 애가 사라지면 취가 사라진다. 취가 사라지면 유가 사라진다. 유가 사라지면 생이 사라진다. 생이 사라지면 노.사.수.비.고.우.뇌가 사라진다. 모든 괴로움은 이ㅣ렇게 해서 사라지는 것이다.
부처님의 모든 일의 연유를 알고 그때의 감흥을 게로 읊었다.
진지하게 열성을 다해 사유하던 성자에게
만법의 이치가 확실해 졌을 때
그의 의혹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제연(諸緣)의 사라짐을 깨달았기 때문에.
이상과 같은 내용의 서술은 남전의 율장《대품(大品)》(1.1)을 비롯해 한역 율장의 《오분율(五分律)》 제15권, 《사분율(四分律)》제31권과 그 밖의 자료에서도 보이고 있다.
정각은 직관이다
《자설경》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두말 할 필요도 없이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성취한 부처님이 마침내 정각(正覺)의 내용을 정리해서 이른바 ‘연기의 법칙’을 확립하게 된 과정을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정각 즉 ‘깨달음’d[ 대해서 조금 더 설명하기로 한다.
첫째 부처님의 정각은 직관(直觀)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직관은 인간에게는 수동적인 것임을 알아야 한다. 중국의 선승들이 즐겨 사용하는 표현대로 한다면 ‘만법(萬法)은 드러나 감출 것이 없다’는 경지다. 보리수 아래 의연히 앉아 있는 부처님 앞에 그 만법이 자신을 드러냈던 것이다. 그때 그의 깨달음(正覺)은 이뤄졌다. 앞서의 감흥게의 한 구절 ‘만법이 확실해 졌을 때’라는 표현이 그것을 말해 준다.
그러나 정각이 이루어졌을 때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무내용(無內容 이다. 아니 그것이야 말로 실제로 풍부한 내용을 가지고 있는 것이겠지만 한편 인간의 오성(悟性)에 의해 생각이 정리된 사상적 내용은 전무 했다고 말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깨달음은 이미 성취하였다고 하여도 부처님이 얻은 직관이 모두 분명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오성이 그것을 다시 생각해서 하나의 사상으로서의 마음을 형성해 가는 것은 그때부터의 작업이라는 얘기다.
앞서 인용한 《자설경》의 문장이 말하고 있는 것은 부처님이 깨달음 직후에 정리해 가고 있는 과정에 관한 것이다. 이 과정에 대해서 《자설경》((1.1)의 글은 먼저 부처님이 ‘7일 지나고 난 뒤에’ 그 삼매에서 나와 초저녁 무렵 순관(順觀)의 연기법을 깨달고 이에 한밤중에 역관(逆觀)의 연기법을 깨달았다고 한다.
이것이 있으면 이것이 있다. 이것이 생기면 이것이 생긴다. 즉 무명에 의해서 행이 있다.......
이것이 없으면 이것이 없고, 이것이 사라지면 이것이 사라진다. 즉 무명이 사라지면 행이 사라진다.......
이러한 《자설경》의 문장 가운데 불교학자들은 특히 다음 두 구절을 뽑아내 그것을 ‘연기의 공식’이라고 한다.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다.(此有故彼有)
이것이 생기면 저것이 생긴다.(此起故彼起)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다.(此無故彼無)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이 사라진다.(此滅故彼滅)
무엇 때문에 이것을 연기의 공식이라고 하는가. 공식이란 일반적으로 통하는 법칙의 관계식(關係式)을 가리키는 말이다. 부처님은 깨달음을 얻은 이후 언제나 앞의 두 문구 중 어느 것인가를 공식으로 해서 문제를 풀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예를 든 《자설경》(1.1)에서는 ‘즉 무명에 의해 행이 있다....’는 긴 연기의 항목들이 나열되어 있다. 이어서 ‘즉 무명이 사라지면 행이 사라진다....’는 긴 연생(緣生)의 항목들이 나열되어 있는데 이 관계의 항목 나열도 ‘연기의 공식’에 의해 생각되고 정리된 것이 그 좋은 예다.
출처 홍사성의 불교사랑 http://cafe.daum.net/hongsas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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