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 정말로 중요한 덕목 두 가지
부처님이 앙가국 첨파성 강가 연못가에 계실 때의 일이다. 첨파성에는 종덕이라는 바라문이 있었는데 그는 대대로 훌륭한 가문의 후예였다. 어느 날 그가 누각에 올라 사방을 바라보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강가 연못으로 가는 것이 보였다. 아랫사람을 불러 이유를 물어보았더니 부처님을 찾아뵙고 가르침을 받기 위해서라는 것이었다.
종덕바라문도 일찍이 부처님의 명성을 들은 바가 있었으므로 사람들과 같이 강가 연못가로 가기로 했다. 그러자 사람들이 나서서 '당신과 같이 훌륭한 바라문이 부처님을 찾아가는 것은 옳지 않다. 부처님이 당신을 찾아와야 한다'며 만류했다. 그러나 종덕바라문은 '파세나디 왕도 부처님에게 귀의했다. 이는 그분이 그만한 덕을 갖추었기 때문일 것이다. 훌륭한 분을 찾아뵙는 것은 내 명성에 흠이 되지 않는다'며 뜻을 바꾸지 않았다.
종덕바라문과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자 이미 저들의 마음을 알고 있는 부처님이 물었다.
"바라문들은 몇 가지 덕을 성취해야 바라문이라 하는가?"
"다섯 가지입니다. 7대 이래 훌륭한 가문이어야 하고(種姓), 3가지 베다를 외우고 뜻을 알며 사람들의 길흉화복을 알고 제사의례에 능통해야 하며(諷誦), 용모가 단정해야 하며(端正), 계를 지켜야 하며(持戒),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智慧)"
부처님은 종덕바라문에게 '그중 한 가지를 제외해도 좋다면 어떤 것을 버리겠느냐?'고 물었다. 바라문은 처음에는 종성, 두 번째는 풍송, 세 번째는 단정의 조건을 제외해도 무방하다고 했다. 왜냐하면 종성이 시원찮고 용모가 추하고 베다를 잘 외우지 못한다 헤서 크게 문제될 것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부처님이 다시 물었다.
"그러면 나머지 두 가지인 지계나 지혜 가운데 하나를 더 제외해도 되겠는가?"
"안됩니다. 만일 계를 지키지 않는다면 지혜는 허망하고 지혜가 없으면 계를 지키려 하지 않습니다. 바라문이라면 이 두 가지는 반드시 갖추어야 합니다."
"그렇다. 지계와 지혜는 왼손 오른손과 같아서 손을 씻을 때 서로 깨끗이 해주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나도 지계와 지혜를 구족한 사람만을 참다운 수행자라고 한다."
-장아함 15권 제22경 <종덕경(種德經)>
당나라 때의 유명한 시인이자 정치가였던 백낙천(白樂天)은 불교에 해박했던 인물이었다. 그의 박학 앞에서는 누구도 오금을 펴지 못했다. 그가 항주의 자사(刺使)로 부임했을 때였다. 마침 인근에 경산도흠(徑山道欽)의 법손으로 도림(道林)이라는 선사가 있었다. 새처럼 나무 위에 둥지를 틀고 좌선을 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조과선사(鳥 禪師)라 부르는 인물이었다. 소문을 들은 백낙천은 어느 날 도림선사를 찾아가 그가 몇 근이나 나가는 고승인지 시험해보기로 했다. 백락천이 도림선사에게 물었다.
"불법의 깊고 중요한 대의는 무엇입니까?(如何是佛法嫡嫡大義)"
"나쁜 일을 하지 말고 많은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그 마음을 깨끗하게 하십시오.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諸惡莫作 衆善奉行 自淨其意 是諸佛敎)"
도림선사의 대답은 '칠불통계게(七佛通誡偈)'라 하여 불경을 몇 줄이라도 읽은 사람은 다 아는 내용이다. 새롭고 신통한 대답을 기대했던 백낙천은 '삼척동자도 할 수 있는 말'이라며 실망을 표했다. 그러자 도림스님은 정문일침(頂門一鍼)과도 같은 한마디를 던졌다.
"삼척동자도 아는 말이지만 팔순 넘은 노인도 실천하기는 어렵지요."
그는 이 한마디에 자신의 오만불손을 크게 뉘우쳤다고 한다. <전등록>4권 '우두산 6세 조종(祖宗)'조에 나오는 얘기다.
안다는 것과 그것을 실천한다는 것은 이렇게 차이가 있다. 유치원 문턱을 넘은 사람이면 누구나 정직하게 살아야 하고 질서를 지켜야 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긴말 그만두고 입 달린 사람 치고 어떻게 사는 것이 옳고 바른 것이라는 것을 모르는 바보는 없다. 그야말로 삼척동자도 다 아는 것이 '바르게 사는 법'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게 사는 모습을 보기란 '가뭄에 나는 콩'이다. 사랑과 자비를 등록상표처럼 내세우는 종교인들마저 현실과 마주하면 미움의 채찍을 휘두른다. 정의와 양심을 내세우는 지식인들일수록 불의와 타협하는데는 선수급이다. 모두가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 어째서 입으로는 정의를 말하고 도덕과 양심을 들먹이는 사람이 파렴치하고 비도덕적인 일에 연루되는가. 어째서 앎과 삶이 어긋나는 해괴한 일이 생기는 것인가. 그것은 지계와 지혜를 구족하는 일에 소홀했기 때문이다. '계를 지키지 않으면 지혜가 허망해지고, 지혜가 없으면 계를 지키려 하지 않는다'는 부처님의 지적을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
출처 홍사성의 불교사랑 http://cafe.daum.net/hongsas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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