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 우주생성과 권력형성의 과정
부처님이 사위국 녹자모강당 계실 때의 일이다. 그 무렵 훌륭한 사위국의 바라문들은 부처님에게 귀의한 바실타와 바라타라는 두 바라문에 대해 비난을 하고 다녔다. 바라문은 범천의 입에서 태어난 종족인데 두 바라문이 자신의 신분을 망각하고 불자가 된 것은 잘못됐다는 것이었다. 어느 날 이 사실을 알게된 부처님은 바실타에게 이렇게 말했다.
"바라문들은 자신들은 청정하고 희며 다른 족성은 어둡고 검다고 한다. 그들은 다른 족성을 경멸한다. 그러나 나는 미천한 족성을 경멸하지 않으며 교만한 마음을 갖지 말라고 말한다. 교만한 마음을 품는다면 끝내 참답고 바른 도를 이루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성계급이란 찰제리와 바라문과 거사와 노예를 말한다. 그러나 귀족인 찰제리라 하더라도 살생 도둑질 음행 등 10악을 짓지 않는 것이 아니다. 이 점은 다른 족성이라 해도 다르 바가 없다. 반대로 사성계급 누구라도 삼보에 귀의하고 선한 공덕을 쌓으면 세간의 복전이 될 수도 있다. 이렇게 본다면 계급차이란 있을 수 없다."
이어서 부처님은 바실타에게 왜 사성계급이 생겨나게 되었는지 그 본연(本緣)을 설명했다.
"옛날 천지의 마지막 겁(劫)이 다해 무너질 때 중생은 목숨을 마치고 다 광음천에 태어났다. 그들은 자연히 화생(化生)하였으며 기쁨으로 음식을 삼고 살았다. 그 뒤 땅은 다 물로 변하고 큰 어둠이 있었다. 이 물이 다시 변해 천지가 되었고 모든 광음천의 무리들은 복이 다해 땅에 태어났다. 그들은 땅에서 솟아나는 단샘을 먹고살았는데 오랜 시간이 지나자 단샘은 말라버렸다. 그 대신 지비(地肥)가 나타나 그걸 먹었다. 그러다가 지비가 다하자 이번에는 멥쌀을 먹고살게 되었다. 그 사이에 사람들은 점점 얼굴이 추하게 변해갔다.
멥쌀을 먹게되면서 남녀의 음욕이 왕성해져 드디어 집을 짓고 아이를 낳기 시작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어느 때부터 멥쌀을 축적하기 시작했다. 이어서 땅을 갈라 표지를 세워 경계를 삼기 시작했으며 도둑이 생기므로 지도자가 필요하게 되었다. 이에 임금을 뽑아 다스리게 했으니 이를 왕족 귀족이라 했다. 이때 무리 중에 '집이란 걱정거리'라고 생각해 집을 떠나 수행하는 사람이 생겼으니 이를 바라문이라 했다. 또한 세간에서 즐거이 살림을 경영해 재보를 저축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이들을 거사라 했다. 그리고 재주가 많아 물건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수트라(노예 천민)라고 했다. 이것이 4성 계급의 본래 인연이다. 그러나 이에 더해 제5의 종성이 있으니 이는 사문이다. 이들은 앞의 4성 계급 가운데 자신들의 신분을 버리고 머리와 수염을 깎고 출가하여 수행하는 사람들이다.
바실타여. 이 모든 종성들은 종성 때문에 과보를 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짓는 착하고 깨끗한 행위와 어둡고 악한 행위에 의해 과보를 받는 것이니라. 그런데 이들 가운데 몸소 진리를 체험해 지혜와 선법을 완성하여 윤회에서 벗어나는 종성은 아라한이 된 제5의 종성이니라."
-장아함 제6권 제5경 <소연경(小緣經)>
이 경전은 두 개의 테마로 구성돼 있다. 하나는 인도의 고질적 병폐인 사성계급의 비합리성에 관한 것이고, 또 하나는 사성계급의 발생과 관련한 세계의 생성과 권력의 기원에 관한 것이다. 널리 알려졌듯이 부처님은 초경험적인 형이상학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가급적 언급을 자제한 종교인이었다. '세계가 영원한가 영원하지 않은가'와 같은 질문을 받으면 끝없는 논쟁만 불러일으키는 희론(戱論)은 무익하다면서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부처님도 다른 자리에서는 이런 문제에 대해 가끔 당신의 견해를 피력한다. 이 경전도 그 중의 하나다. 이 경전의 문면을 통해 부처님의 생각을 분석해보면 우주와 삼라만상은 절대자에 의해 창조된 것이 아니라 성주괴공(成住壞空)의 법칙에 의해 순환한다는 것이다. 또한 국가와 권력의 발생도 왕권신수설(王權神授說)의 입장이 아니라 사회계약설(社會契約說)에 가깝다. 즉 왕은 하늘이 특별한 권력을 부여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사회적 필요에 의해 선출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힌두교를 비롯한 종래의 인도종교가 계급제도를 신의 의지에 의한 결정으로 보는 것과는 많은 차이를 나타내는 것이다. 또한 우주의 생성과 발전에 관한 문제도 창조론적인 것이 아니고 진화론적인 것이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원환적(圓環的) 무시무종론(無始無終論)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는 <기세인본경(起世因本經)>도 이 경전의 내용과 비슷하다.
출처 홍사성의 불교사랑 http://cafe.daum.net/hongsas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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