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고(苦)(2)
고고(苦苦) ㆍ행고(行苦) ㆍ괴고(壞苦)
그러면 또 한가지 명료한 대답이 나오는 경*(남전 상응부경전(38ㆍ14) 苦. 한역 잡아함경(18ㆍ1) 難等)을 예로 들어보자. 앞에서 잠깐 언급했던 잠부타다카라는 외도 수행자와 사리풋타와의 문답이다.
나는 이렇게 들었다. 어느 때 장로 사리풋타가 마가다국의 나라카라는 마을에 머물고 있을 무렵의 일이다. 그때 잠부카다카라는 외도수행자가 장로 사리풋타를 찾아와 정중하게 인사를 나누고 그 옆에 앉아 이렇게 물었다.
“친애하는 벗 사리풋타여, 고, 고 하는데 도대체 고한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친구여 이런 세 가지가 괴로움(苦)이다. 즉 고고성(苦苦性)*(苦苦性:painful sensation caused by bodily pain, dukkhadukkhatā. 육체적 감각에 연유하여 느끼는 괴로움)ㆍ행고성(行苦性)*(行苦性 :painful sensation having its origin in the sankhāra, sankāradukkhatā, 諸行無常에 연유하여 느끼는 괴로움)ㆍ괴고성(壞苦性:painful sensatin being caused by change, vipariṇāmadukkhatā. 즐거움이 없어질때 느끼는 괴로움)이다.”
“그러면 친구여, 그런 고를 다 알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거기에 이르는 방법은 무엇인가.”
“친구여, 물론 그런 고를 다 아는 길이 있다. 그곳에 이르는 방법이 있다.”
“그러면 친구여, 그 길이란 무엇인가. 그 방법이란 무엇인가.”
"친구여, 저 성스러운 여덟 가지 바른 길이야말로 그러한 고를 다 알게 되는 길이다. 그것은 바로 정견ㆍ정사ㆍ정어ㆍ정업ㆍ정명ㆍ정정진ㆍ정념ㆍ정정이다. 친구여, 이것이 그런 고들을 다 알게 되는 길이며 거기에 이르는 방법이다.“
“친구여, 그 고를 다 알게 되는 길은 참으로 좋다. 그 방법은 참으로 훌륭하도다. 친구 사리풋타여, 그것은 또한 부지런히 노력해야 하는 길이다.”
여기서 사리풋타가 외도수행자 잠부카다카를 위해 설법한 고에 대한 설명은 앞서 부처님이 라다를 위해 설명했던 그것과는 그 상황이 상당히 다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먼저 부처님과 사리풋타가 각각의 질문에 대해 대답하는 내용을 나란히 기록해 놓고 살펴보자. 부처님은 라다를 위해 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라다여, 색은 고다. 수는 고다. 상도 고다. 행은 고다. 식도 고다.”
그런데 사리풋타는 잠부카다카를 위해 고를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친구여 이 세 가지가 고다. 즉 고고성ㆍ행고성ㆍ괴고성이다. 이 세 가지가 고인 것이다.”
얼핏 보면 스승인 부처님과 제자인 사리풋타의 대답은 전혀 다르게 보인다. 두 가지 설명 사이에는 어디에도 상통되는 곳이 없는 듯 생각된다. 그러나 사리풋타가 누구인가. ‘부처님으로 하여금 위대한 법륜을 굴리게 하고 그것에 따라서 법륜을 바르게 굴려간다’*(남전 中部經典 111 不斷經)고 하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스승과 전혀 상이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앞서 예로 든 고의 설명에서는 왜 차이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일까. 이것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고의 문제를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무상한 것은 고다
부처님이 라다를 위해 고에 대해 설명했던 방법은 지극히 알기 쉬운 것이었다. 부처님은 보이는 그대로 그것을 오온에 대입시켜 설명하고 있다. 즉 인간을 구성하는 다섯 가지 요소 하나하나를 고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라다여, 너의 육체(色)와 정신(受ㆍ想ㆍ行ㆍ識)은 고이니라’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아마 라마도 그런 뜻으로 스승의 말을 받아들였을 것이 틀림없다. 이미 살펴보았듯이 라다는 늙어서 죽음의 그림자가 이미 짙게 그의 심신을 뒤덮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부처님의 설명은 그에게 더없이 구체적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부처님은 고의 문제를 매우 주관적인 입장에서 해설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비해서 사리풋타가 잠부카다카를 위해 설명했던 예화는 오히려 객관적인 입장에서 고의 문제를 해설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사리풋타가 잠부카다카의 질문에 대답한 내용은 세 가지다. 그것은 고고성ㆍ행고성ㆍ괴고성이다. 이 세가지의 내용을 순서대로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 고고성이란, 고연(苦緣) 즉 애당초 괴로운 조건으로 생기는 고통이란 뜻이다. 춥고 더운 것이 심하면 괴롭다. 목마름도 괴롭다. 칼이나 창에 찔려도 괴롭고 채찍으로 맞는 것도 괴로운 일이다. 이렇게 처음부터 괴로운 조건에서 생기는 고를 고고라고 한다. 그리고 이것을 추상명사형으로 말해 고고성이라 한다.
둘째 행고성이란, 변하는 모든 것은 괴로운 것이란 뜻이다. 여기서 행이란 옛 사람의 주석에 의하면 천류(遷流)하는 의미다. 즉 만물은 변천하고 흘러가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존재의 무상함을 표현하는 말이다. 이러한 무상을 조건으로 생기는 괴로움을 행고라고 한다. 그리고 이것을 추상명사형으로 말해 행고성이라 한다.
셋째 괴고성이란, 언젠가 쇠퇴해서 무너지는 것은 괴로움이라는 뜻이다. 옛 사람은 괴고를 ‘즐거움이 무너지는 괴로움’이라고 주석하고 있다. 아무리 부귀를 욕심껏 누린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쇠퇴하고 만다. 아름다움을 자랑하던 꽃도 마침내 시든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무상을 만나면 반드시 이별을 하게 된다. 애당초 즐거움이란 인간의 애착하는 마음에 의해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그 대상이 무너지면 그것을 조건으로 하여 괴로움이 생긴다. 이것이 괴고다. 그리고 이것을 추상명사로 말해 괴고성이라 한다.
그러면 이같은 여러 거지 고 또는 고성 가운데 부처님이 주로 문제로 삼았던 것은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행고 또는 행고성이었다. ‘무상한 것은 고다’라고 말한 것에서도 이 점은 명확하다. 이 무상이란 구체적으로 말하면 생로병사였고, 그것은 바로 고였다. 이것을 구체적으로 말하면 ‘너의 색 ㆍ수 ㆍ상 ㆍ행ㆍ식이 바로 고’라는 설명이 된다.
출처 홍사성의 불교사랑 http://cafe.daum.net/hongsas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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