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진리 앞에서의 평등
마지막 남은 생명의 불꽃을 끝까지 제자들을 위한 가르침으로 연소 시켜야 겠다는 부처님의 의지는 혹심한 병고를 참게 하는 힘이 되었다. 그래서 부처님은 어느 정도 원기를 회복할 수 있었다. 그때 부처님의 시봉이었던 아난다는 스승의 임종이 가까웠음을 알고 이렇게 말했다.
부처님이시여, 부처님께서는 이제 다시 원기를 회복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병이 심하셨을 때 저는 온 몸에서 힘이 쭉 빠지고 사방이 캄캄해지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 저는 부처님께서 교단에 관해 말씀하는 유훈도 없이 세상을 떠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어느 정도 마음의 안도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아난다가 부처님에게 했던 말뜻을 헤아려보자. 그가 이해한 바에 따르면 부처님은 지금까지 교단의 지도자였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이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반드시 교단의 다음 지도자에 대한 언급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아직까지 부처님이 그런 문제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으므로 아직 최후의 시간은 다가온 곳이 아니다. 이것이 아난다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부처님은 이 문제에 대해 좀 생각이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부처님 자신이 건강했을 때 제자들에게 했던 말에서도 알 수 있다. 이미 앞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부처님은 당신 자신을 조금도 교단의 지도자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다만 승가라는 화합집단의 일원이자 지혜의 길을 함께 걸어가는 ‘좋은 벗(善友 , 善知識)’ 이라는 것이 부처님 자신이 생각한 교단 내에서의 위치였다.
부처님이 자신을 승가의 지도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무엇보다도 진리(法)를 독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분이 가르친 진리란 만인에게 평등하고 공개된 것이었다. 누구든지 법을 깨닫고 그렇게 산다면 그가 곧 성자다. 이는 다른 종교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특별한 예이다.
예수의 경우, 그는 신의 독생자로 자처했다. 아무리 뛰어난 예수의 제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예수처럼 신의 독생자가 될 수는 없다. 따라서 그 앞에서는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복종관계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부처님의 경우는 전혀 다르다. 당신이 깨달은 진리를 만인에게 공개하고 누구라도 그것을 바로 알고 실천하면 그는 해탈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가르침의 핵심이다. 다만 부처님은 다른 사람보다 먼저 진리를 깨닫고 실천하며, 또 다른 사람에게 그 모범을 보이고 그것을 가르쳤다는 점에서 그분은 ‘스승’의 위치를 누릴 뿐이다. 이 점은 세계의 어떤 종교 개창자와도 다른 독특한 일면이다. 이는 임종을 앞둔 부처님이 아난다에게 했던 말에서도 구체적으로 잘 나타나고 있다.*(남전 대반열반경(2·24)
그러면 아난다여, 비구들은 나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단 말인가. 나는 안도 없고 바깥도 없이 모든 법을 다 가르쳤다. 나의 법에는 어떤 것을 제자에게 숨기는 것 같은, 스승만이 가지고 있는 비밀이란 없다.
진실로 아난다여, 만일 내가 승가의 지도자라든가, 승가가 나에게 의지하고 있다든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나는 임종을 맞이해서 승가에 대해 무엇인가 이야기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아난다여, 나는 이 승가의 지도자도 아니며, 승가가 나에게 의지하고 있다고도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아난다여, 나는 이 승가에 대해 더 말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앞에서도 여러 차례 지적한 것처럼 불교승가에 있어서는 모든 구성원이 서로서로 착한 벗(善知識)이고 평등하고 화합하는 단체가 되어 서로 도우며 격려하는 것을 그 근본정신으로 한다. 따라서 거리에는 지배하는 자도 없고, 지배받는 자도 없다. 모든 사람이 법 안에 있으며 평등하다. 부처님 또한 이러한 평등화합의 승가의 한 사람 구성원 일 뿐이다. 그렇다면 부처님의 후계자로 어떤 사람이 지명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전혀 잘못된 것이고 불필요한 일이다. 적어도 진리가 공개되고 그것을 누구나 볼 수 있고 실천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 진리를 어떤 사람이 비밀스럽게 전수받거나 그런 이유로 해서 승가의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그렇지만 불교승가에 있어서 부처님의 지위는 역시 어떤 특별한 것이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왜냐하면 불교의 부처님이란 뛰어난 스승에 의해 깨달아진 진리이고, 그분의 가르침에 의해 제시된 해탈의 길이며, 그래서 많은 비구들이 출가수행의 길을 걷게 되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출가한 이후에도 줄곧 스승인 부처님을 우러러 보며 법을 근본으로 하고 국법으로 삼고 의지처로 삼아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부처님은 분명히 불교승가의 구성윈의 한 사람이지만, 또한 뛰어난 지도자이자 스승인 것도 제자들 입장에서는 인정하지 않을 t 없다는 이야기이다. 따라서 부처님의 제자들은 자기들이 걸어가는 지혜의 길에는 역시 분명히 지도자가 있고 그 지도자란 다름 아닌 부처님이라고 생각한다 해도 그것은 결코 도리에 어긋난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한 번 더 곰곰이 생각하며 부처님이 가르친 진리의 본래 모습을 더듬어 보면, 그것은 무엇보다도 법을 근본으로 하면서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것을 앞세우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부처님은 지금 이 점을 아난다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출처 홍사성의 불교사랑 http://cafe.daum.net/hongsas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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