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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구 교수의 불교와 과학]⑫ 공덕녀(功德女)와 흑암녀(黑暗女)

slowdream 2009. 7. 3. 04:02

[김성구 교수의 불교와 과학]⑫ 공덕녀(功德女)와 흑암녀(黑暗女)
동전의 양면처럼 이중성은 사물의 본질
삶과 죽음의 본능도 하나의 뿌리서 연유
기사등록일 [2009년 06월 29일 13:33 월요일]
 

 

인간의 사유방식이 이분법적(二分法的)이기 때문에 이원론(二元論, Dualism)이 사람의 직관에 잘 들어맞는다. 선-악이나 정신-물질 이원론은 사람의 직관에 잘 맞을 것이다. 그러나 사물을 세밀하게 관찰하면 이원론으로 세상사를 설명하는 데는 많은 문제점이 따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원론이 아니라면 일원론(一元論, Monism)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것이 인간의 사유방식이다.

 

그런데 사실 일원론도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러나 이중성(二重性, Duality)이 사물의 본질임을 알게 되면 이런 문제들은 자연스럽게 해소된다.『화엄경(華嚴經)』을 비롯하여 불교의 여러 경전에는 공덕녀(功德女)와 흑암녀(黑暗女)의 얘기가 나온다. 경전마다 얘기의 줄거리는 약간씩 다르지만 내용은 비슷하다. 공덕녀와 흑암녀는 자매로서 떨어질 수 없는 사이다. 둘은 항상 같이 다닌다.

 

공덕녀는 사람에게 재물과 건강과 행복을 가져다주는 아름다운 천녀(天女)이고 흑암녀는 추악한 여인으로 사람에게 불행과 재난을 가져다주는 악신(惡神)이다. 행과 불행, 부귀와 빈천, 공덕과 재난, 선과 악 등은 대립되는 개념이지만 이들이 같은 뿌리에서 오는 것임을 이 우화는 말하고 있다. 세상사의 이중성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공덕녀와 흑암녀의 얘기를 프로이드 심리학으로 해석하면 삶의 본능(Eros)과 죽음의 본능(Thanatos)이 될 것이다. 인간은 ‘삶의 본능’에 이끌려 삶을 살며 건설적인 행위나 사랑을 하게 되고 ‘죽음의 본능’에 이끌려 증오와 공격 등 파괴적인 행동을 하며 이 본능으로 인해 죽음에 이른다는 것이 이 이론의 골자다.

 

불교나 물리학이 이중성에 관해 얘기하더라도 보통 사람들이 이중성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 이중성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우화(寓話)가 하나 있다. 정신의학자 메닝거(Karl Menninger, 1893-1990)의 유명한 저서 『자기에게 배반하는 자(Man against Himself)』에 나오는 얘기다.

 

바그다드의 교외에 많은 노예를 거느리며 사는 한 부호가 있었다. 어느 날 이 부호가 한 노예를 바그다드로 심부름을 보냈다. 심부름을 보낸 후 시간이 얼마 지나지도 않아 이 노예가 시킨 일을 하지도 않고 가쁜 숨을 쉬며 되돌아왔다. 왜 심부름을 마치지도 않고 돌아왔느냐고 주인이 물었더니 이 노예가 대답했다.

 

“제가 주인님의 심부름을 위해 바그다드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바로 길에서 죽음의 신을 만났습니다. 너무 무서워서 이렇게 도망쳐 왔습니다. 저는 죽음의 신을 피해 사가랴로 떠날 생각입니다. 지금 출발하면 오늘 저녁 해질 무렵엔 거기에 도착할 수 있을 겁니다.”


노예의 말을 들은 주인은 크게 노했다.
“신이라는 자가 약속을 어기다니! 내 노예를 적어도 바그다드에서는 잡아가지 않기로 약속했는데 바그다드에서 너를 잡으려고 하다니! 너는 지금 바로 사가랴로 떠나거라. 부지런히 가면 해질 무렵엔 사가랴에 도착할 수 있을꺼야.”

 

말을 마치자 주인은 즉시 천상으로 올라가 죽음의 신을 만났다. 주인이 따지자 이번엔 신이 외쳤다. “무슨 소리야 놀란 건 내 쪽이야. 나는 오늘 해가 지면 그를 사가랴에서 잡기로 되어 있었는데 낮에 바그다드에서 그를 만났으니 내가 얼마나 놀랐겠어? 바빠. 나는 그를 잡으러 지금 사가랴로 떠나야 해.”

 

노예는 삶의 본능에 의해 사가랴로 도망치지만 이 행동이 그대로 죽음의 신한테로 가는 것이 된다. ‘삶의 본능’과 ‘죽음의 본능’은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것이다. 둘은 이중성을 이루는 것이다. 

 

김성구 이화여대 명예교수 


1004호 [2009년 06월 29일 1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