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것이 왔다” 창작불보살론(創作佛菩薩論)
“지금은 한국불교 1,600년 역사 이래 최대의 전성기이다.”
누구의 말일까. 이 말을 한 사람은 D대 C교수님이다. 작년 종교편향으로 불교에 대한 위기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발언한 내용을 인터넷에서 알 수 있었다.
C교수는 아는 사람이다. 2004년도 모 불교교양대학에서 이다. 그 때 당시 초기경전을 가르치셨던 그 분에 대한 기억은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다. 일주일 한번 주어진 시간에 진도 보다는 주로 ‘신변이야기’를 많이 하였던 기억이 나기 때문이다.
최근 통계자료를 보면
한국불교가 최대의 호황임은 틀림 없는 사실이다. 그런 사실은 통계가 말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교계 신문에서 본 글이다. 해방 전에 불교의 신자는 기독교의 신자 보다 통계상 더 적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대한민국에서 신자가 가장 많은 종교로 자리매김 하고 있으니 단군이래 최대번영기가 아니냐고 쓴 글이다.
통계상으로 본 다면 대한민국 최대의 종교는 불교이다. 그러나 다수의 종교는 아니다. 불교, 개신교, 천주교 이렇게 세종교가 정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것도 천주교의 교세가 눈에 띠게 두드러지고, 개신교 또한 ‘성시화 운동’같은 공격적인 선교방식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적으로 나타난 불교신자비율은 최근 급격하게 줄어 들고 있다고 한다. 미디어붓다에서 발표된 기사(http://www.mediabuddha.net/detail.php?number=3974&thread=23r02)를 보면 매우 층격적이다. 표를 보면 불과 일이년전까지만 해도 불교가 부동의 1위 이었으나 2008년도에 개신교에 1위자리를 내주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개신교 대통령이 배출 되고 난 이후에 나타난 현상이라고 한다. 공직사회에서 부터 불기 시작한 기독교로의 쏠림 현상은 일반사회의 관리/전문직까지 파급되고 있고 또 사무/준전문직으로 까지 확대 되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불교신자가 가장 많은 직종은 판매서비스직과 같이 하위직이나 소득이 낮은 계층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종교도 이제 1등종교와 2등종교로 나뉘어 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낮고 있다.
사실 도시의 하늘에서 교회의 십자가는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다. 그러나 사찰을 보기는 가뭄에 콩 나듯이 희귀하다. 이런 사실이 결국 고학력 전문직이나 파워엘리트가 교회로 쏠리게 된 요인 중의 하나 일 것이다. 교회는 넘쳐 나는데 마땅히 갈 만한 사찰은 없다는 것이다. 그런 단적인 예가 서울에서 교회대 사찰의 숫자이다.
최근 불교tv에서 본 ‘종교편향과 도심포교에 대한 토론회’를 보면 서울에서 교회대 사찰의 숫자가 5,700대 180이라고
또한 2008년 10월에 발표된 ‘바른교회아카데미’에서 발표한 통계자료를 보면 한국교회의 일년예산이 약3조7천억원이고, 천주교가 약4천억원, 불교가 4천700억원이라 한다. 이와 같이 경제적인 면에서 있어서도 한국불교는 개신교와 비교 하였을 때 게임이 되지 않는다.
개별적으로 조사한 자료에서도
통계적으로 나온 자료가 이렇다면 실제로 체감 하는 느낌은 어떨까. 수도권에 있는 할인점에서 본 광경이 한국불교의 현실에 대하여 단적으로 말해 주는 하나의 자료가 될 것이다.
할인점의 대명사는 이마트이다. 전국에 골고루 퍼져 있는 이마트 중에 산본 중심상가에 있는 이마트에 가게 되었다. 계산을 마치고 나오는데 벽에 마일리지 적립현황판이 붙어 있었다. 자세히 보니 지역단체 마일리지 이다. 물건을 사고난 후에 받은 영수증을 지역의 단체에 기부 하는 것이다.
산본 이마트의 2009년도 1/4분기 지역단체 마일리지 현황판을 보고 깜짝 놀랐다. 100개가 넘는 단체 중에 상당 부분이 교회 이고, 사찰은 지극히 미미한 숫자 라는 사실이다.
사실 도시에서 교회의 숫자와 사찰의 숫자를 비교 해 보면 그리 놀랄만한 일도 아니다. 열에 아홉은 교회이고 그 것도 규모가 큰 대형교회가 수두룩 한 것을 보면 그런 현상이 현황판에 그대로 나타 났다고 볼 수 있다. 현황판에 나타난 교회대 사찰의 비율을 한번 조사해 보았다.
지역단체는 총 110곳이다. 주로 아파트 부녀회와 복지관등을 빼면 종교 단체가 51개로서 전체의 46%를 차지 한다. 종교단체별 숫자를 보면 아래와 같다.
교회가 39곳(76%)
성당이 7곳(14%)
사찰이 5곳(10%)이다.
여기서 사찰은 정각사, 정혜사. 법해사, 능인선원, 원불교안양교당 다섯곳이다. 비율로 따졌을 때 9.8%에 지나지 않는다. 밖에서 보는 교회와 사찰의 비율이 마일리지 현황판의 비율과 거의 일치함을 알 수 있다.
수도권 신도시에서 이런 현황판이 한국불교의 현주소를 고스란히 보여 주는 것 같다. 불자가 2천만이라고도 하고 통계에 잡혀 있는 숫자는 천만이 더 된다고 하는데 체감 하는 현실은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마일리지 적립금액을 알아 보았다. 종교단체중에 마일리지가 높은 순으로 10곳을 보면 다음과 같다.
1위 수리동성당 312,030
2위 군포성당 153,484
3위 군포용호성당 133,833
4위 산본교회 83,888
5위 남서울산본교회 78,511
6위 은혜와진리교회 71,896
7위 정각사 65,340
8위 법해사 49,439
9위 성요한의집 48,009
10위 시민의교회 46,395
(2009년 1/4분기 산본 이마트 지역마일리지 금액순위, 단위 1000원)
1위 부터 3위까지 성당이 차지 하였다. 금액은 3억1천만원으로 수리동성당이 1위이다. 산본 중심상가 안에 위치한 정각사는 7위로서 7천1백만원 정도이다. 금액으로 보았을 때도 불교는 톱클라스가 아니다. 지역사회 어느 곳에서든지 사찰 보기 힘든 현상이 할인점 현황판에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고 금액 또한 현저 하게 밀리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불교의 정체성은
한국불교가 단군이래 최대의 번영기를 맞고 있다고 주장 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지금은 한국불교가 최대의 위기에 봉착해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 요인으로 ‘한국불교의 정체성’ 문제를 들고 있다.
한국불교를 대승불교라고 한다. 한국에서의 대승불교는 자력적인 ‘선불교’에서 부터 타력적인 ‘불보살신앙’까지 모두 포함하여 말한다. 이를 두고 ‘통불교(通佛敎)’라고도 말한다. 통불교란 ‘한 종파에 국한하지 아니하고 불교 전체에 통하는 교리’를 말한다.
이렇게 여러가지 이름으로 불리우는 불교가 혼재 되어 있다 보니 뚜렷한 특색이 없고 오로지 ‘기복불교’와 ‘방편불교’로 흘러 가고 있다고 하는 것이 비판론자들의 주장이다. 반면에 어떤 이는 이를 두고 ‘비빔밥’ 같은 불교라고 말하기도 한다. 물론 좋은 의미로 말하는 것이다. 중생의 근기에 맞게끔 자력신앙과 타력신앙을 선택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두고 강력히 비판 하는 사람들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다. 특히 인터넷시대에 있어서 넷상에 자신의 의견을 펴는 사람들이다. 이런 의견을 펴는 사람들의 주장은 대승불교에 대하여 매우 비판적이다. 그 중에서도 타력적인 요소가 강한 정토신앙과 관음신앙과 같은 ‘불보살신앙’이다. 심지어 이를 두고 ‘창작불보살’이라고 말하기 까지 한다.
새로운 용어 ‘창작불보살론(創作佛菩薩論)’
창작불보살론을 주장 하는 글을 인터넷상에서 읽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인터넷의 속성상 검색창에 단어만 넣으면 카페, 블로그, 지식등의 서비스를 통하여 언제 어디서든지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창작불보살이라는 단어를 접하였을 때 무척 충격적이었다. 익히 알고 있는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이 모두 허구라는 것이다. 그리고 대승경전이 모두 대승논사들에 의하여 창작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불자라면 어렴풋이 알고 있지만 공개적으로 표출 하지는 않는다. 불교전래 이래 1600년 동안 믿어 왔기 때문에 의문이 가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 갔다고 볼 수 있다.
인터넷 시대에 느닷없이 창작불보살론이 등장하게 된 배경이 무엇일까. 아무래도 대안이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그 대안은 부처님의 원음이라 불리우는 ‘니까야’와 남방상좌불교의 수행법인 ‘위빠사나’의 도입 때문일 것이다. 이런 부처님 당시의 초기불교가 도입 된지는 오래 되지 않는다. 1990년대 말 부터 소개 되었으니 이제 20년 된 것이다. 그 것도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시작 되는 2000년 이후 부터이다. 남방국가에서 불교공부를 하고 돌아온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소개 하고 난 이후부터 탄력이 붙었다고 볼 수 있다.
“올 것이 왔다”
창작불보살론이 유포 되고 있는 현상을 보고 느끼는 점은 “올 것이 왔다”라는 것이다. 언제가 터져 할 문제가 지금 터진 것이다. 그 것도 기존 종단내의 제도권에 제기 된 것도 아니고 인터넷상에서 제기된 것이다. 그렇다면 대승비판과 안티불교와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대승불교비판도 일종의 안티라고 볼 수 있다. 안티의 의미는 무엇일까. 안티의 사전적인 의미는 다음과 같다.
안티
안티, 안티팬은 어떠한 대상에 대하여 반대하고 공격하는 집단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이러한 집단은 인터넷의 발달과 동시에 본격화 되었다.
안티는 인터넷의 발달과 동시에 본격화 되었고 주로 기존 제도권의 모순과 위선에 관한 사항이라 볼 수 있다.
종교적으로 보면 기독교에 대한 안티가 유명하다. 그런데 기독교안티는 철저하게 반기독교적인 정서에 의존 한다는 것이다. 그런 반면에 불자들이 제기 하는 창작불보살론은 반불교적이라기 보다 대안을 제시 하면서 모순과 위선을 극복 하자는 것으로 파악 할 수 있다. 이런 점이 불법승을 모독하고 폄하 하는 악의적인 안티와 구별 되는 점이다.
인도에서 왜 불교가 멸망 하였을까
부처님의 나라 인도에는 불교가 없다. 불교가 사라진 이유에 대하여 여러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최근에 나온 ‘차츠마나’라는 책이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미디어 붓다’의
“이슬람 침략 이후 안티힌두교라는 불교의 사회적 역할을 이슬람이 대체하게 되었고, 그 결과 인도에서 불교의 정치적 역할은 소멸됐다.”
이에 대하여 호주의 판카즈 모한 교수는 “7~8세기의 불교는 대중적 지지기반을 이미 상실했고, 불교의 생명력이 병든 상태였다.” 라고 말하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인도의 불교는 병들게 되었을까. 가장 큰 원인으로 “힌두 의식을 받아들이면서 불교 본래의 아이덴티티를 상실하게 된 점”을 꼽았다는 것이다. 즉 7~8세기경 불교교단이 힌두교 의식을 받아들이면서 9~10세기경부터 불교는 힌두교와 크게 구분되지도 못했고, 인도 내에서 대중적인 지지도 상실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또한 “방대한 불교경전을 요약본으로 만들고, 요약본을 다라니로, 다라니를 만트라로 줄였는데, 일반인들은 만트라만으로 불교를 이해할 수 없었던 점도 불교가 지지기반을 상실한 이유”라는 것이 판카즈 교수의 설명이라는 것이다.
한국불교의 현실을 보면
이런 논란이 지금의 한국불교의 현실을 보여 주는 것 같다. 인도에서 불교가 힌두화 되고 이슬람의 침략으로 망했다는 사실이 현재 한국 불교가 처해 있는 상황과 너무 유사 하기 때문이다. 한국불교가 처한 현실을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인도에서 불교가 힌두화 되었듯이 한국불교가 민속화 내지는 무속과 습합하여 토착화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은 순례법회를 다닐 때 확인 될 수 있는 사항이다. 불자들은 법당에 들른 다음에 가는 곳이 산신각이나 칠성각, 삼성각과 같이 전통신앙과 습합된 공간이다. 그 곳에서 열심히 절하고 기도 하는 모습을 보통 보는 일이다.
둘째로 인도에서 불교가 유일신교인 이슬람교에 의하여 망하였듯이 한국에서 유일신교인 기독교의 공세가 거세다는 것이다. 인도에서 불교가 망한 이유중의 하나로 이슬람의 침략을 들고 있는데 이슬람교는 유일신교이다. 마찬가지로 한국에 들어와 맹위를 떨치고 있는 종교 역시 이슬람과 형제종교인 기독교이다. 그런데 불교에도 타력신앙이 있다. 불교식 타력신앙이라 볼 수 있는 ‘불보살신앙’이다. 즉 관세음보살로 대표 되는 ‘관음신앙’, 아미타불로 대표 되는 ‘정토신앙’, 지장보살로 대표 되는 ‘지장신앙’ 같은 것이다. 불자들은 이들 불보살을 절대시 하고 불보살의 가피에 크게 의존 한다. 그러다 보니 이들 불보살을 유일신교의 그것과 치환해도 모를 정도로 타력적인 요소가 강하다.
셋째 방편불교의 성행이다. 49재나 우란분재, 천도재 같은 경우이다. 48재나 우란분재와 같은 경우 전통이 있다고는 하지만 천도재는 너무 심한 것 같다. 아는 법우님의 이야기 중에 어느 분이 개신교로 개종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유는 천도재 때문이라고 한다. 처음에 527만원을 들여서 천도재를 하였는데 또 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 때 관심있게 지켜 보던 목사에 의하여 설득 당하여 교회를 나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주변에 천도재를 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그 액수가 대부분 백만 단위가 넘어 가고 좀 여유 있게 산다는 사람들은 천만 단위까지 간다고 한다.
한국불교, 어떻게 해야 하나
한국불교가 토속화 되고, 불보살의 가피와 천도재와 같은 타력적인 요소에 의존 하게 되었을 때 우리나라에 들어와 세력을 떨치고 있는 유일신교와 차별성이 없어 지고 만다. 바로 이런 현상이 인도의 대승불교가 힌두교와 유일신교인 이슬람에 흡수 된 현상과 유사 하다고 본다. 따라서 넷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창작불보살론’이 널리 유포 되고 공감을 일으키는 요인도 불교의 위기감에서 일 것이다.
창작불보살론은 매우 충격적이다. 불자라면 누구도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엄연한 사실로 여겨지고 있다. 그렇다고 창작불보살론으로 인하여 신심이 약화 되어 유일신종교로 줄줄이 개종 하게 될까 우려 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실을 알고 나면 신심이 더 생겨 날 수 도 있고, 정토신앙이나 관음신앙과 같은 불보살신앙을 대치 할 수 있는 정법(正法)의 초기불교와 같은 대안이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보아서 더 잘 된 일이 될 수 있다.
창작불보살론은 언제 누군가는 터뜨려야 할 운명을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그 시기가 인터넷시대와 초기불교의 보급과 맞아 떨어졌기 때문에 가능 했다고 볼 수 있다. 인연이 되어 시기적으로 무르익은 것이다.
한국불교가 언제까지 반기독교적인 정서에 의존 하여 꾸려 나갈 수 없다. 또 비신자들이 불교와 정서적으로 가까울 것이라고 아전인수격으로 해석 하는 것도 무리가 있다. 문제는 한국불교의 타력적인 신앙의 요소이다. 타력적인 신앙이라면 타력신앙의 진수인 유일신교를 따라 잡을 수 없다. 불교가 가장 불교 다울 때 불교가 소수 종교로 떨어 지지 않고 다시 한번 중흥을 맞이 할 수 있을 것이다.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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