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화상이 임제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임제는 대답했다. “황벽에게서 왔습니다.” “황벽이 무엇을 가르쳐주었는가?” “제가 불법의 대요를 묻다가, 화상에게 얻어맞았습니다. 저의 허물이 무엇인지를 모르겠습니다.” 대우화상이 말했다. “황벽이 자네를 위해서 그렇게 절절하게 가르침을 주었는데 허물만을 찾는가?” 이 말끝에 임제는 깨닫고는 말했다. “원래 황벽의 법이란 것도 별개가 아니구나.”
임제(?~867)는 출가해 황벽문하에서 공부를 했다. 그때 묵주가 수좌를 맞고 있었다. 묵주는 임제를 돕고자, 황벽에게 나아가서 질문을 하도록 권했다. 이에 임제는 불법의 대요가 무엇인가를 물었지만, 세 번이나 주장자로 얻어맞기만 했다. 임제는 자신의 우둔함을 한탄하면서 행각을 떠날 것을 결심했다. 그러자 묵주는 임제에게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황벽화상을 찾아뵙길 권했다. 하직인사를 하려온 임제에게 황벽은 대우화상을 찾아가라고 지시했다.
임제는 대우화상의 “그렇게 절절하게 제시함을 모른단 말이야”는 말에 황벽의 법을 깨닫게 된다. 대우화상은 “무엇이 무엇인지를 모르겠다고 하더니, 황벽의 불법이 별개 아니라고 말하니 이게 무슨 짓이냐?” 반문하자, 임제는 대우화상의 아랫배를 주먹으로 갈겼다.
이에 대우는 인정하면서 “황벽에게 가라”고 말했다. 임제는 다시 황벽에게 돌아왔고 황벽은 “너는 어찌해 이렇게 왔다갔다 돌아다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임제는 “노파심이 너무 간절하기 때문입니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황벽이 “대우를 보면 아프도록 한 대 갈기겠다”고 응수하자, 임제는 “지금 당장 갈기죠”하곤 황벽을 한 대 갈겼다. 그러자 황벽은 크게 웃었다.
이것이 『전등록』에서 전하는 젊은 임제가 깨닫는 일화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황당하기 그지없는 이야기이다. 스승과 제자 사이에 폭력이 오고간다. 그런데 놀랍게도 스승은 그것을 인정하고 있다. 진리의 현현이 주먹질이다. 외형적인 모습으로만 해석하면, 이것은 심각한 사회적인 풍속을 저해하는 불순한 가르침이다.
하지만 긍정적으로 보면, 그의 주먹질은 어떤 권위도 인정하지 않는 커다란 평등을 말한다. 또한 그의 주먹질은 모든 사량 분별을 끊어내는 칼날이기도 하다. 그가 황벽에게 얻어맞는 일을 머리로서, 분별로서, 언어적인 개념을 통해서 이해하려는 태도를 취했기 때문에 결코 이해가 될 수가 없었다. 머리로서, 지식으로서 진리를 이해하려는 태도가 견고하면 할수록, 임제의 가풍은 더욱 거칠고 그의 주먹질은 더욱 날카로워질 것이 분명하다.
고려 후기와 조선의 선불교는 사실상 임제종 계열이 전부라고 할 만큼, 송대에 부흥한 임제종은 독주를 해왔다. 조선의 선승은 모두들 스스로 임제의 자손임을 자부하여 왔다. 그 만큼 임제의 가풍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임제의 가풍을 인정사정이 없이, 날카롭게 곧바로 가로질러가는 경절(徑截)의 칼날에 비유하곤 한다.
우리는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는 임제의 유명한 경책을 잘 알고 있다. 이것은 아마도 그의 깨달음의 경험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그는 이렇게 크게 얻어터지면서, 일체의 고정된 앎과 사회적인 관습을 일거에 무너뜨렸다. 왜냐면 바로 스스로 이런 냉엄한 가풍에서 자라났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는 또한 이점에 매우 감사해했다.
조사를 관념으로 이해하고, 부처를 우상으로 간주한다면, 이런 조사는 죽어야 하고, 이런 부처는 약효가 없다. 주먹질은 사회적 우상과 끝없이 이어져온 관념의 타파였으며, 논리적이고 관습적인 관계에서 벗어난, 얼굴과 얼굴의 소통이요, 몸과 몸의 소통이요, 마음과 마음의 소통이었다.
인경 스님 동방대학원대 명상치료학 교수
출처 법보신문 1011호 [2009년 08월 25일 1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