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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사후 30주년]“잘 살아보세” 대중의 욕구와 결합한 경제신화

slowdream 2009. 10. 27. 02:52

[박정희 사후 30주년]“잘 살아보세” 대중의 욕구와 결합한 경제신화

 

 

ㆍ진보진영이 바라본 박정희

경북 구미시에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찾는 방문객은 올 9월만 따지면 하루 평균 3000명이 넘는다. 생가 사무소에 따르면 1995년 한해 2만9580명이던 방문객은 해가 갈수록 늘어 이제는 매년 50만명 가까이 찾고 있다. 지금까지 450만여명이 찾았다. 인간 박정희는 30년 전 오늘 서거했지만 사람들의 기억 속에 ‘위대한’ 지도자로 되살아나고 있다.

‘박정희’라는 세 글자는 산업화와 압축성장, 강력한 발전국가 모델, 군사적 가부장주의 등 60~70년대 한국 사회를 규정한 하나의 시대에 다름 아니다. 지금도 한국사회가 그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경향신문은 이러한 현상을 ‘박정희주의’라고 가설적으로 명명하려고 한다. 물론 논쟁의 여지가 있다. 그의 사상과 업적에 ‘~주의’를 붙일 만큼 일관된 담론이 있는지도 분명하지 않거니와, 박정희 시대에 이뤄진 경제성장 자체가 신화라는 의견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긍·부정 평가와 별개로 박정희 시대가 오늘의 한국 사회 모습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점과 그 그늘이 이제는 넘어서야 할 대상이라는 점을 인정한다면, 그러한 명명이 꼭 가치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안의 박정희를 성찰적으로 탐색함으로써 박정희의 그늘을 진정으로 넘어서는 계기를 마련하자는 뜻에서 진보 성향의 학자, 지식인들에게 ‘박정희주의’를 물었다.

#‘박정희주의’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는 ‘박정희주의’를 “박정희 시대의 구조적, 의식적 유산이 현재적 형태로 변형돼 재생산되는 것”과 “박정희식 리더십, 즉 강한 국가에 대한 향수”로 규정했다. 박정희식 리더십의 기업적 표현이 현대건설이었고, 현 정부의 4대강 정비 강행도 그런 리더십의 연장선상이라는 점에서 2009년 한국의 보수파는 ‘박정희주의’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다. 윤해동 성균관대 연구교수는 “박정희로 소급하지 않을 수 없는 한국의 안온한 현실에 대해, 그 은혜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측이 우파이고 그의 업적을 무시하는 측이 좌파라면, 오히려 우파가 인간적인 사람들이고 좌파는 무능하면서 게다가 비인간적이기까지 한 사람들이 아닐까”라고 반문했다. “박정희한테 발목 잡혀서, 자신을 돌아보는 능력을 상실했다는 점에서는, 좌파가 오히려 정통 ‘박정희주의자’”라는 지적이다.


유신·독재 등 객관적 평가없이
‘비극적 죽음’으로 신화 완성
사회 위기때마다 향수 불러
4대강 사업 강행 등 여전


한국은 전후 세계자본주의 체제의 주변부에서 가장 효율적인 체제를 구축했다고 평가 받는다. 이른바 ‘후후발 자본주의국가’라는 규정이다. 윤 교수는 “중요한 것은 ‘후후발’의 내용, 즉 자유주의 없는 민주주의, 국가 주도의 효율적 자본주의”라고 했다. 그 본질은 박정희 혼자서 이를 만든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박정희는 ‘잘 살아보자’라는 대중의 현실적 욕구를 포착해 이들의 에너지를 이끌어냈다고 평가 받는다. 따라서 경제성장이 단순히 강요에 의해 도달할 수 있는 수준 이상으로 도달하는 게 가능했다(유철규 성공회대 교수)는 것이다.

한국인의 정신 깊이 뿌리내린 군대문화와 가부장주의도 박정희주의의 또 다른 이름이다. 박노자 오슬로대 교수는 “박정희는 우리에게 여전히 ‘한국적 근대성’ 그 자체”라고 말했다. 가령 술자리에서 ‘유신 시절이 좋았다’고 떠드는 사람은 보기 어려워도 ‘군대는 갔다와야 남자가 된다’는 투의 얘기는 쉽게 들을 수 있다. 독재는 나쁘고, 민주화가 좋다는 인식은 있지만 군대식 문화, ‘리더십=명령과 복종’으로 받아들여지는 권위주의, 여성은 아내·어머니가 아니라면 성적 이용물로 여겨지는 문화가 여전히 한국사회를 움직이는 바탕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박 교수는 그런 점에서 우리는 여전히 ‘박정희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고 했다. 하승우 한양대 연구교수는 “‘독재는 박정희 때나 있었다’는 식으로 치부함으로써 가부장주의나 집단주의 같은 우리 속의 ‘은밀한 독재’를 정당화하는 것은 아닌가”라고 했다.

#‘박정희주의’는 왜 엄존하는가

“군대도 제대하고 나면 향수의 대상이 된다.”(진중권 시사평론가) “해외 나가서 엘지, 삼성 간판 보고 좋아하는 느낌이 있는 한 박정희주의는 계속될 것이다.”(유철규 교수) ‘박정희주의’가 지속되는 요인을 잘 설명하는 말이다. 조희연 교수는 “‘막걸리 마시는 대통령’이라는 청빈한 이미지가 양주를 마시며 환락의 밤을 보내는 이미지로 해체될 겨를도 없이 박정희는 비극적 죽음을 맞았다”고 말했다. 경제개발로 가난을 벗게 해주면서도, 본인은 정작 소탈함의 대명사로 전설처럼 남았다는 것. 우석훈 연세대 강사는 “박정희의 유신 경제는 그 자체의 모순으로 무너진 것이 아니라 장엄한 죽음으로 신화를 완성했다”며 “박정희 시대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이뤄지지 않은 채 그저 ‘경제’라는 단어의 대명사가 됐다”고 했다. 한국경제가 위기에 부딪힐 때마다 박정희가 부활할 운명이라는 설명이다.


 


진보 진영 내에서는 양극화 등으로 삶이 어려워지면서 대중들이 더욱 진보적으로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유철규 교수는 “박정희 모델은 실제로 가시적인 성과를 낸 사례이기 때문에 삶이 어려워질수록 찾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금의 서민 삶 위기의 바탕에 신자유주의가 있다는 설명이 설득력을 얻을수록 박정희는 대안으로 떠오른다. 지금과 달라보이는 국가와 자본의 관계에 대한 향수도 깔려 있다. 그 향수는 ‘국가가 잘 되면 나도 잘 될 것’이라는 끈질기게 지속되는 오해에 근거한다. 그 오해가 ‘국가가 잘 되면’에서 ‘삼성, 엘지가 잘 되면’으로 바뀌긴 했지만 말이다.

아울러 박정희의 개발과 산업화 정책이 대중들의 자발적 동의를 얻어 힘을 받았듯이 현 정부의 신개발주의 역시 사람들의 욕망에 기반하는 측면이 있다. 그것은 뉴타운, 4대강, 새만금 등에 대한 지역민들의 기대가 큰 것에서 잘 드러난다. 이른바 ‘개발의 소외감’이 신개발주의를 추동하는 역설이다. 조희연 교수는 “진보·개혁 세력이 개발의 소외감을 박정희식 개발주의를 넘어서는 에토스로 바꾸는 정책을 구현했어야 하는데 민주 정부는 이에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대안은 무엇인가

‘박정희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진정한 민주화와 성장 일변도가 아닌 균형 성장, 형평성 있는 성장이 이뤄지는 사회복지국가가 제시됐다(임혁백 고려대 교수). 이 외에도 박정희와 다른 방식으로 먹고 사는 법을 개발하고 구현해야 한다(조희연 교수)든지, 양적성장에서 질적성장으로 전환해야 한다(진중권 시사평론가)는 얘기도 있었다. 신자유주의의 거센 파도를 막아내 대중들의 퇴행적인 박정희 향수를 덜어내는 것이 극복의 길이라는 점에 많은 이들이 동의한다. 그러다 보면 역시 국가의 역할로 가게 된다. 사회복지국가이든, 강력한 발전국가이든 국가의 역할을 강조하는 한 박정희에 대한 향수는 한동안 계속 우리 곁을 맴돌 것이 분명하다. ‘엄한 아버지’ 같은 국가에서 ‘자애로운 아버지’ 같은 국가로 바뀐다고 해도 그것은 근본적으로 가부장주의적인 국가이기 때문이다.

‘박정희주의’ 극복위해선
‘국가’ ‘성장’에 현혹되지 않는
민중의 자립기반 확립과
다양한 경제가치 모색해야


‘국가’에 기대지 않으면서 ‘성장’(또는 ‘발전’)에도 현혹되지 않을 수 있는 대안이 필요한 이유다. 유철규 교수는 “박정희주의의 극복은 전적으로 박정희 부정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박정희가 대중의 현실적 욕망에 부응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에서 온다”고 했다. 대중들의 ‘잘 살아보세’라는 욕망은 어떻게 사회·문화적으로 형성됐고, 어떻게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우석훈 강사는 “다양성에 기반한 다른 경제적 흐름이 생겨나면 경제주의의 원형인 박정희의 유신 경제가 어느 정도 극복될 것”이라며 “생태, 젠더, 문화 등 개발주의 시대와는 다른 가치로 경제가 움직이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민중들이 자립과 자치의 삶을 확립하는 경험을 바탕으로 자립경제의 기반을 만들고 분권화된 자치질서를 만드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는 얘기도 귀 기울일 만하다. 하승우 교수는 “삶이 뿌리없이 흔들리고 표류하니 외부의 강력한 권위에 기대게 되는 것”이라며 “각자가 자기 삶의 기반을 다지고 희망을 꿈꿀 수 있다면 박정희 향수가 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새마을운동으로 파괴된 자체적인 조직인 생활협동조합 같은 공동체를 아래로부터 다시 조직하는 운동에 관심이 많다. 국가가 잘 되지 않아도 비슷한 환경에 처한 사람들끼리 도우며 잘 살 수 있다는 경험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다. 박정희의 그늘 벗기는 무엇보다 지금과 같은 성장이 지속되기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 도움주신분박노자(오슬로대·한국사), 박태균(서울대·한국사), 우석훈(연세대·경제학), 유철규(성공회대·사회학), 윤해동(성균관대·한국사), 이정우(경북대·경제학), 임혁백(고려대·정치학), 조희연(성공회대·사회학), 진중권(시사평론가·미학), 하승우(한양대·정치학), 홍윤기(동국대·철학)
 

출처 경향신문 <손제민·송윤경기자 jeje17@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