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가 코앞이다. 한가위는 우리가 여태 간직한 대중적인 고유어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그건 곧 한가위가 여전히 우리에게 소중한 명절이라는 증거이기도 하다.
명절이어서만은 아니다.
가을은 얼마나 정겨운 계절인가.
가을에 들리는 소리는 또한 얼마나 고즈넉한가.
태양의 기세가 한 풀 꺾였어도 이삭이 영글고 바람이 없는데도 다 익은 열매가 절로 떨어진다.
귀기울이면 만물이 익어가는 소리와 성숙한 열매들이 씨앗으로 거듭나기 위해 대지로 투신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슬도 채 걷히지 않은 아침나절, 마치 목숨을 거둬들이듯 밤새 떨어진 밤과 은행을 주우면 한 생이란 이처럼 단단하거나 무르거나 상관없이 익어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나는 또한 찬바람이 불고 달이 차오르면 김남주 시인의 ‘가엾은 리얼리스트’라는 시를 떠올린다.
“시골길이 처음이라는 내 친구는/ 흔해빠진 아카시아 향기에도 넋을 잃고/ 촌뜨기 시인인 내 눈은/ 꽃그늘에 그늘진 농부의 주름살을 본다”
그처럼 열여섯 이후 고향을 떠나 도시에 살았던 나는 도시 한복판 관목처럼 우거진 빌딩 사이에서도 산그늘을 느낀다.
어쩌면 저 조잡한 아파트 단지들도 산을 꿈꾸는 우리의 욕망의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매끄러운 대리석 바닥은 맑은 시냇물을 옮겨놓은 것인지도, 밤새 명멸하는 불빛들은 별을 옮겨놓은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전진한다고 믿으며 이루어낸 모든 것들이 사실은 회귀를 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문명으로 모든 걸 대체할 수 있다 하더라도 단 하나, 자연이 그어주었던 저 농부의 주름살만은 재현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
“가난한 시대의 가엾은 리얼리스트/ 나는 어쩔 수 없는 놈인가 구차한 삶을 떠나/ 밤별이 곱다고 노래할 수 없는 놈인가”
그렇게 잃어버린 노래는 영영 되찾을 수 없을 것이다.
<손홍규 | 소설가>
출처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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