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종(曹洞宗)의 개조 동산(洞山) 양개(良介, 807-869)스님은 『반야심경』을 외우다가 “무안이비설신의(無眼耳鼻舌身意)”라는 구절에서 자신의 코를 만지면서 “여기 이렇게 있는데 왜 없다고 할까”하고 스승에게 물음을 던졌다고 한다. 물리학자들도 똑같은 물음을 던진다. “보는 사람이 없으면 우주는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라고 묻기도 하고 “달을 보는 사람이 없다면 달은 거기에 존재하지 않는가?”하고 묻기도 한다.
뉴턴만큼 존경받은 물리학자는 찾을 수 없지만 아인슈타인 역시 ‘신이 선택한 인간’이라는 평을 듣는 물리학자이다. 아인슈타인은 물질의 실재성(實在性)에 대한 양자역학적 해석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위에 소개한 두 번째 질문, “달을 보는 사람이 없다면 달은 거기에 존재하지 않는가?”라고 하는 것도 양자역학의 전통적 해석이라고 할 수 있는 코펜하겐 해석에 대해 아인슈타인이 던진 질문이다.
현실적인 거시적 세계에서는 아무도 이 물음에 대해 그렇다하고 대답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전자(電子)와 같은 소립자(素粒子)에 대해서는 측정하지 않고서는 입자의 존재를 말할 수 없다는 것인가? 전자를 측정하여 어떤 위치에서 발견되었다면 측정하기 전에 전자가 그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그곳에서 전자를 발견하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아인슈타인의 생각이었다. 물론 여기에 대해 양자역학은 이렇게 말한다. 관측되기 전의 전자는 확률파로서 존재하기 때문에 위치라는 물리적 속성을 갖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입자라는 실체도 없다. 말할 수 있는 것은 확률파가 전부다. 측정행위에 의해 파동이 붕괴되고 전자가 어떤 위치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이때 비로소 전자의 위치가 정확한 값을 갖는 것이다. 위치가 정의되는 것과 더불어 전자가 나타나는 것이다. 그런데 위치가 정의되는 순간 운동량은 물리적 실재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러한 전통적인 해석은 불확정성 원리로 설명하는 것이다. 측정을 할 때 파동함수가 붕괴되고 입자가 나타나는 것은 측정 시에 측정기구가 어떤 식으로든 관측대상과 접촉하여 운동량을 전달하기 때문에 확률파가 붕괴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의 실험에 의하면 그렇지도 않다.
방사능 물질이 아무리 불안정해도 그것을 계속 관측하고 있으면 방사능붕괴가 일어나지 않는 것을 보여주는 실험이 있었다. 우리나라 물리학자들도 입자-파동의 이중성을 조사하는 실험을 하였다. 이 실험에서 측정기구가 측정대상과 상호작용을 통하여 운동량을 주고받더라도 물리계에서 정보를 얻지 않으면 그 물리계는 파동의 상태로 남아 있다는 것이 관측되었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든 정보를 얻으면 파동이 붕괴되고 입자가 나타난다.
쉽게 설명하자면 파동이기도 하고 입자이기도 한 어떤 대상(측정을 위해 마련한 물리계)을 손으로 만져보면(측정하면) 만진 충격 때문에 파동성이 사라진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해석이었지만, 이번 실험은 ‘아무리 만져도 파동인지 입자인지 모르면 이중성은 유지된다’는 것이다. ‘달’은 보기 때문에 거기에 그렇게 있는 것이다. 결국 ‘인식하는 자’가 ‘인식한다는 사실’이 인식대상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승기신론』이 말하는 바와 같이 “세상은 마음이 만들어내는 것이다(三界虛僞 唯心所作)”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성구 이화여대 명예교수
출처 법보신문 1034호 [2010년 02월 02일 10: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