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 칼럼을 마치면서〈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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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자역학, 불교와 물리학 공통적 이해의 장
상대성이론과 접점 설명 못해 아쉬움 남아- 2010.12.28 17:10 입력 발행호수 : 1078 호 / 발행일 : 2010년 12월 29일
- 양자역학, 불교와 물리학 공통적 이해의 장
본 칼럼의 마지막 원고로서 지금까지 설명해온 것을 간단히 정리해보면 물질의 실재성을 부정하는 양자역학적 해석은 물리학과 불교 교리 사이에 공통적 이해의 장을 제공한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학철학자들 중에는 실제로 그렇게 주장하는 이도 있다. 그런데 양자론과 더불어 현대물리학의 양대 기둥이라고 하는 상대성이론의 불교적 의미에 대해서는 이 칼럼에서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였다.
상대성이론 중에서도 일반상대성이론이 함축하고 있는 불교적 의미는 양자론 전체와 비교할 만치 풍부하다. 일반상대성이론에서는 시공간의 모양이 물질의 분포와 운동을 결정하고 물질의 분포와 운동이 시공간의 모양을 결정한다. 일반상대성이론은 물질과 시공간의 관계에 대해 불교의 연기설을 이론적으로 정립해 놓은 것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 여기서 일반상대성이론에 대한 얘기를 계속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신, 앞서 단편적으로 말한 바가 있지만, 종교와 불교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생각을 정리하기로 하자.
양자역학의 코펜하겐 해석은 “관찰자가 보지 않으면 무엇이 실재한다고 말할 수 없다”고 한다. 이에 반해 아인슈타인은 이 해석의 주창자인 보아와 오랫동안 논쟁을 하였다. 이 논쟁을 생각하면 불교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생각은 부정적일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아인슈타인은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미래의 종교에 가장 가까운 종교가 불교라고 보았다.
인격신을 부정했기 때문에 아인슈타인을 가리켜 종교를 부정하는 무신론자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아인슈타인 자신은 진리 탐구를 위해 종교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막스 야머의 “Einstein and Religion”에 나와 있는 아인슈타인의 종교관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관측행위와 무관한 객관적인 실재가 있고 이 실재가 따르는 법칙이 있다. 이 법칙은 논리적 방법으로는 찾을 수 없고 종교적 감정을 통해서 직관하는 수밖에 없다. 이 종교적 감정은 경험한 사람만이 알 수 있을 뿐 말로 설명할 수는 없다. 그리고 과학이란 종교적 감정을 통해 직관한 것을 인간의 이성적 사유에 맞추어 정리한 것이다. 종교와 과학은 진리 탐구를 위해서 필요한 수레의 두 바퀴와 같다. 종교적 진리와 과학적 진리가 다른 것일 수 없다.
미래의 종교는 과학자에게 영감을 줄 수 있고 그 교리는 과학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미래의 종교를 우주적 종교, 과학자에게 영감을 주는 종교적 감정을 우주적 종교적 감정이라 부르자.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예언자들은 이 우주적 종교적 감정을 느끼고 있었고 특별히 불교는 이 요소를 강하게 갖고 있다. 관측자의 관측행위와 독립적인 객관적인 실재가 있다고 본 것은 양자론의 해석에서 보면 잘못이고 불교교리에도 위배된다. 이것은 아인슈타인이 제법의 실상이 공임을 깨치지 못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비록 법성 또는 사물의 공성을 보지 못해 객관적 실재를 믿었지만 “진리는 설명할 수 없는 종교적 감정을 통하여 직관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 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관에, 그리고 관한 것을 이론적으로 정리한 과학은 교에 해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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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구 이화여대 명예교수
출처 법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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