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서는 범부들이 ‘있는 것’을 ‘없는 것’으로 보고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본다고 한다. 이 말을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미시세계의 현상에 대한 양자역학적 해석을 생각해보면 이 말이 맞는 것처럼 보인다. 양자역학적 해석에 의하면 물질은 실제 이상으로 구체적이거나 실질적인 외형을 갖추고 있다. 미시세계에서 보면 우리가 보는 물질들은 환영(幻影)이나 신기루에 비유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시간(時間)과 공간(空間)은 어떠할까?
시간과 공간은 존재하는 모든 것의 배경이며 존재하는 것들이 활동하는 무대인 것처럼 보인다. 공간은 물질의 존재와는 상관없이 무한히 펼쳐져 있고 시간과 공간은 무관하며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흘러가는 것처럼 보인다. 과거-현재-미래의 순서도 모든 사람에게 같을 것 같다. 공간도 마찬가지다. 나에게 100m인 거리는 다른 사람에게도 100m일 것 같다. 이러한 시간과 공간을 물리학에서는 절대시공간이라고 한다.
절대시공간은 고전역학의 창시자인 뉴턴이 사고실험을 통해 도입한 것이지만 고전역학보다는 고전전기역학에서 더욱 필요로 하는 개념이다. 전자파의 일종인 빛이 별이나 태양에서 지구에 도달하는 것을 설명하려면 절대시공간의 개념이 꼭 필요했던 것이다. 별과 지구사이는 아무 물질이 없는데 어떻게 전자파의 일종인 빛이 진공을 통과하는가 하는 것이 문제였다. 당시의 물리학자들은 파동의 전파(傳播)에는 반드시 매질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물리학자들은 진공이 에테르(ether)라는 물질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했다. 물의 진동이 물결파를 전파하듯 에테르의 진동이 전자파를 전파한다고 본 것이다. 그리고 빛의 속도가 초속 30만 km라는 것을 이론적으로 계산할 수 있었는데 누가 측정할 때 그 값을 얻는가 하는 것도 해결해야할 문제였다. 에테르가 존재한다면 이 문제도 쉽게 해결된다.
절대시공간의 개념에서는 물체의 속도란 정지한 에테르에 대해서 물체가 얼마나 빨리 움직이는가하는 것을 뜻한다. 빛의 속도가 초속 30만 km라는 것은 정지한 에테르에 대해서 그렇다는 뜻이다. 에테르에 대해서 움직이는 관측자에게는 빛의 속도가 다르게 보일 것이다.
1887년 미국의 물리학자 마이켈슨과 모올리가 빛의 속도를 측정하고 에테르의 존재를 확인하고자하였다. 그런데 그 속도는 항상 일정하였다. 관측자가 빛을 따라가면서 측정하든 빛으로부터 멀어지면서 측정하든 빛의 속도는 언제나 같았다. 이 실험결과를 사실로써 받아들이려면 인간이 갖고 있는 개념을 바꾸어야만 한다.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바뀐다면 빛의 속도가 관측자의 속도와 무관하게 일정하다는 것이 이상할 것도 없다. 사람이 갖고 있는 고정관념을 바꾸기는 어려운 일이었지만 1905년 아인슈타인은 절대시공간의 개념을 버리는 이론을 발표하였다. 이 이론을 특수상대성이론이라고 하는데 이 이론에 의하면 에테르란 없고 시간과 공간은 모두 관측자의 운동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
시공간도 물질처럼 실체가 없고 ‘공’한 것이다. 물질도 시공간도 모두 관측자와의 연기적 관계에 의해서 나타난 것이다. 꼭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물질계는 단지 가립(假立)된 존재일 뿐이다. 불교와 과학은 분명히 다른 것이지만 현대물리학은 이렇게 불교적 진리를 뒷받침하고 있다.
김성구 이화여대 명예교수
출처 법보신문 1061호 [2010년 08월 25일 16: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