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는 어떤 대상을 신앙하고 섬기지 않는다. 정법(正法)을 따를 뿐이다. 정법이란 연기법이다. 연기의 이치를 알아야 사물의 실상을 아는 것이고 사물의 실상을 알아야 참된 행복을 얻는다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연기의 이치를 모르는 것이 무명(無明)이고 무명이 곧 생사윤회의 근원이다. 어떤 명제이든 연기법에 맞으면 그것을 불교적 가르침이라 할 수 있고 연기법에 맞지 않으면 불교의 가르침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현대과학과 충돌하지 않는 유일한 종교가 있다면 그것은 불교라고 말하는 종교학자가 있다. 물리학자 아인슈타인도 비슷한 내용의 말을 한 적이 있다. 이들이 말한 대로 불교교리가 과학적 진리와 양립하는 것이라면 연기법은 물질계에도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연기법이 물리학의 기본 원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실상은 어떤지 살펴보기로 하자. 연기의 뜻과 적용범위가 너무 깊고 넓어 여기서는 영역만 물질계로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그 뜻도 상의상관관계(相依相關關係)라는 한 가지 뜻만으로 제한하겠다.
물리학자들이 연기법을 알고서 거기에 맞추어 물리학의 이론을 만든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연기법이 물리학의 기본 원리라는 것은 부분적으로는 옳은 말이다. ‘부분적으로 옳다’고 한 것은 연기법이 부분적으로만 과학적으로 옳다는 뜻에서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니다.
궁극적으로는 연기법이 물리학의 기본 원리가 되어야 하지만 현대물리학은 현 단계로선 연기법을 부분적으로만 반영하고 있다는 뜻에서 한 말이다. 지금까지 이 칼럼에서 설명해온 바와 같이 양자역학은 물질과 관찰자가 연기적으로 얽혀 있음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설명하려는 상대성이론은 시공간(space-time)과 관찰자가 연기적으로 얽혀 있음을 말하고 있다. 시공간과 물질과 관찰자가 모두 연기적으로 얽혀 있음을 말하는 물리 이론은 아직 없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은 물질과 시공간을 포함한 모든 물리적 존재와 그 운동을 관계론적이고 사건중심으로 기술한다는 점에서 불교의 연기법을 과학이론으로 정립했다고 말해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일반상대성이론은 미시세계의 현상을 기술하지 못한다. 그리고 양자역학은 중력(시간과 공간에 대한 현상)을 기술하지 못한다. 상대성이론이나 양자론은 모두 자연의 일부만을 기술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이들 이론은 모두 연기법을 부분적으로만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물리학자들이 과학의 ‘마지막 이론(final theory)’이라거나 또는 ‘만물의 이론(theory of everything)’이라고 부르면서 찾고 있는 통일장 이론(unified field theory)은 알고 보면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론을 결합한 이론이다. 이런 궁극적 이론이 있다면 이 이론은 반드시 연기법에 맞아야 한다. 연기법에 맞지 않으면 그것은 물리학의 궁극적 이론이 될 수 없다. 만일 물리학자들이 통일장 이론을 구성하는데 실패한다면 그것은 그만큼 연기법의 의미가 깊다는 것을 뜻한다.
연기법에 어떤 과학적 결함이 있어서가 아니라 과학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불가능할 만치 그 이치가 깊다는 것을 뜻한다. “연기는 깊고 깊다”고 했는데 물리학자들이 찾는 궁극적 이론은 실현 가능한 것일까?
김성구 이화여대 명예교수
출처 법보신문 1058호 [2010년 08월 02일 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