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위해서 경
이교도의 유행자들이 그대 수행승들에게 ‘벗들이여, 세존 아래서 영위하는 청정한 삶은 괴로움을 완전히 알기 위한 것이라고 하는데, 그 괴로움이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 하자. 수행승들이여, 이처럼 묻는다면, 그대들은 이들 이교도의 유행자들에게 이렇게 대답해야 한다.
벗들이여, 시각은 괴로운 것이다. 세존 아래서 영위하는 청정한 삶은 이것을 완전히 알기 위한 것이다. 형상들은 괴로운 것이다. 세존 아래서 영위하는 청정한 삶은 그것을 완전히 알기 위한 것이다. 시각의식은 괴로움이다. 세존 아래서 영위하는 청정한 삶은 그것을 완전히 알기 위한 것이다. 시각접촉은 괴로운 것이다. 세존 아래서 영위하는 청정한 삶은 그것을 완전히 알기 위한 것이다. 조건에 따라 시각접촉으로 일어난 느낌은 무엇이든지, 즐겁거나 고통스럽거나 즐겁지도 고통스럽지도 않거나 간에, 그 또한 괴로움이다. 세존 아래서 영위하는 청정한 삶은 이것을 완전히 알기 위한 것이다.
*번역 출처 전재성 박사 <오늘 부처님께 묻는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