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마까 경
(존자 케마까가 바다리까 승원에 있으면서 병이 들어 괴로워했는데 중병이었다. 문병온 장로 수행승들과 나눈 법담의 일부이다.)
“벗들이여, 예를 들어 청련화, 홍련화, 백련화의 향기가 있다고 합시다. 누군가 그것이 꽃잎의 향기, 꽃받침의 향기, 꽃수술의 향기라고 말한다면, 그는 옳게 말한다고 봅니까?”
“벗이여, 그렇지 않습니다.”
“벗들이여, 어떻게 설명해야 바른 설명이 되겟습니까?”
“벗이여, 꽃과 관련된 향기라고 설명해야 바른 설명이 될 것입니다.”
“벗들이여, 이와 같이 나는 물질을 두고 ‘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물질이 아닌 것을 두고 ‘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느낌을...지각을...형성을...의식을 두고...아닌 것을 두고 ‘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다섯 가지 존재의 집착다발과 관련해서 ‘내가 있다’라는 생각을 뿌리 뽑지는 못했습니다만, 다섯 가지 존재의 집착다발과 관련해서 어느 것 하나라도 ‘나’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벗들이여, 어떤 고귀한 제자는 다섯가지 낮은 단계의 장애를 끊었다고 하더라도, 다섯가지 존재의 집착 다발 가운데 미세하게 발견되는 ‘내가 있다’라는 자만, ‘내가 있다’라는 욕망, ‘내가 있다’라는 잠재적 경향을 아직 뿌리 뽑지 못했습니다.
그는 나중에 다섯 가지 존재의 집착 다발 가운데 일어나는 생멸에 대하여 ‘물질은 이와 같고, 물질의 발생은 이와 같고, 물질의 소멸은 이와 같다. 느낌은...지각은...형성은..의식은...이와 같다’라고 관찰해야 합니다.
그가 이 다섯 가지 존재의 집착다발들의 생멸을 관찰하면, 다섯 가지 존재의 집착다발들에 섬세하게 발견되는 아직 끊어지지 않은 ‘내가 있다’라는 자만, ‘내가 있다’라는 욕망, ‘내가 있다’라는 잠재적 경향은 두루 뿌리 뽑힙니다.
벗들이여, 예를 들어 더러워져 때가 묻은 옷이 있는데, 주인은 그것을 세탁업자에게 맡겼고, 세탁업자는 그것을 소금물이나 잿물이나 쇠똥에 고루 뒤섞어 맑은 물에 세탁했다고 합시다.
아무리 그 옷이 청정하고 깨끗하더라도 아직 거기에는 남아 있는 소금물 냄새가 잿물 냄새가 쇠똥 냄새가 가신 것은 아닙니다. 세탁업자가 그것을 주인에게 주면, 주인은 그것을 향기가 밴 상자에 넣어 보관해서, 거기에 배어 있는 냄새를 없애 버립니다.”
*번역 출처 전재성 박사 <오늘 부처님께 묻는다면>
*''내가 있다'는 '자의식'으로, '자만'은 '착각'으로 옮기는 것이 좀더 이해에 와닿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