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싸지의 경
“세존이시여, 제가 병이 들었을 때 저는 계속해서 신체적 형성을 진정시키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삼매를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삼매를 얻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여기서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앗싸지여, 삼매를 본질로 하고 삼매를 수행자의 경지와 일치시키는 수행자들과 성직자들은 삼매를 얻지 못하면 ‘우리는 결코 여기서 물러서지 않겠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
“앗싸지여, 물질이나 느낌이나 지각이나 형성이나 의식은 영원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그렇다면 무상한 것은 괴로운 것인가 즐거운 것인가?”
“괴로운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상하고 괴롭고 변화하는 것에 대하여 ‘이것은 나의 것이고, 이것은 참으로 나이여, 이것은 나의 자아이다’라고 관찰하는 것은 옳은 것인가?”
“옳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앗싸지여, 어떠한 물질이나 느낌이나 지각이나 형성이나 의식일지라도, 과거에 속하든 미래에 속하든 현재에 속하든, 내적이든 외적이든, 거칠든 미세하든, 저열하든 탁월하든, 멀리 있든 가까이 있든,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내가 아니고,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올바른 지혜로 관찰해야 한다.”
“앗싸지여, 그러므로 잘 배운 거룩한 제자는 이와 같이 보아서 물질에서도...느낌에서도...지각에서도...형성에서도...의식에서도 싫어하여 떠난다.
싫어하여 떠나서 욕망이 사라지고 욕망이 사라져서 해탈한다. 해탈하면 해탈했다는 지혜가 생겨나서 ‘태어남은 부서졌고, 청정한 삶은 이루어졌고, 해야 할 일은 다 마쳤으니,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다’라고 그는 분명히 안다.”
“그는 즐거운 느낌을...괴로운 느낌을...즐겁지도 않고 괴롭지도 않은 느낌을 느끼면, 그것이 무상하다고 알고, 탐착할 것이 아니라고 알고, 환락할 것이 아니라고 안다.
그는 즐거운 느낌을...괴로운 느낌을...즐겁지도 않고 괴롭지도 않은 느낌을 느껴도 집착없이 느낀다.
그는 육체의 한계에 도달했다는 느낌을 느끼면, 육체의 한계에 도달했다는 느낌을 느낀다는 사실을 안다. 목숨의 한계에 도달했다는 느낌을 느끼면, 목숨의 한계에 도달했다는 느낌을 느낀다는 사실을 안다. 몸이 파괴되고 목숨이 다하고 나면, 이세상에 즐겁지 않은 모든 느낌마저도 식어버릴 것이라고 잘 안다.”
“앗싸지여, 예를 들어 기름과 심지를 조건으로 등불이 켜지고, 그 기름과 심지가 다하면 자양분이 떨어져 불이 꺼지는 것과 같이, 수행승은 육체의 한계에 도달했다는 느낌을 느끼면, 육체의 한계에 도달했다는 느낌을 느낀다는 사실을 안다. 목숨의 한계에 도달했다는 느낌을 느끼면, 목숨의 한계에 도달했다는 느낌을 느낀다는 사실을 안다. 몸이 파괴되고 목숨이 다하고 나면, 이세상에 즐겁지 않은 모든 느낌마저도 식어버릴 것이라고 잘 안다.”
*번역 출처 전재성 박사 <오늘 부처님께 묻는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