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경전/상윳따니까야

말룽끼야뿟따 경

slowdream 2022. 10. 12. 18:13

말룽끼야뿟따 경

 

“말룽끼야뿟따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에게는 지금까지 인식하지 못했고, 예전에도 결코 인식한 적이 없고, 지금도 인식하지 못하고, 인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도 할 수 없는, 정신에 의해 알려질 수 있는 사물들에 대한 어떤 욕망이나 탐욕이나 애착이 있는가?”

“세존이시여, 없습니다.”

 

“자, 말룽끼야뿟따여, 그대에게 보이고 들리고 감각되고 인식된 것에 관하여 말한다면, 보인 것 안에는 보인 것만이 있을 뿐이며, 들린 것 안에는 들린 것만이 있을 뿐이며, 감각된 것안에는 감각된 것만이 있을 뿐이며, 인식된 것 안에는 인식된 것만이 있을 뿐이다.

 

말룽끼야뿟따여, 보인 것 안에는 보인 것만이 있을 뿐이며, 들린 것 안에는 들린 것만이 있을 뿐이며, 감각된 것안에는 감각된 것만이 있을 뿐이며, 인식된 것 안에는 인식된 것만이 있을 뿐이라면, 말룽끼야뿟따여, 그대는 그것에 의해서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에 의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대는 그것 안에도 있지 않을 것이다. 그것 안에 있지 않다면, 여기나 저기나 그 양자 사이에도 있지 않을 것이다. 이 자체가 괴로움의 종식이다.”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께서 간략하게 말씀하신 바의 그 뜻을 상세하게 이해합니다.

 

혼란된 새김으로 형상을 보면

매혹적인 인상에 마음이 쏠려

오염된 마음으로 그것을 경험하고

마침내 그것에 탐착하고 만다.

그래서 형상에서 생겨난

갖가지 느낌들이 안에서 자라나

마음이 혼란되어

탐욕과 분노도 더불어 자라난다.

이와 같이 괴로움을 키운다면

그에게 열반은 멀다고 하리...

 

새김을 확립하여 형상을 보면

형상들로 불타지 않고

오염되지 않은 마음으로 그것을 경험하고

마침내 그것에 탐착하지 않는다.

그래서 형상을 보더라도

이렇게 새김을 확립하고 지내면

느낌을 경험하더라도

괴로움은 사라지고, 자라나지 않는다.

이와같이 괴로움을 키우지 않는다면

그에게 열반은 가깝다고 하리.”

 

 

*번역 출처 전재성 박사 <오늘 부처님께 묻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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