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 교섭의 경
바라문이여, 세상에 어떤 수행자나 성직자가 완전히 청정한 삶을 선언하였음에도 여인과 함께 서로 교합할 뿐만 아니라, 여인의 마사지, 지압, 세욕, 안마를 즐기면, 그는 그것에 유혹되고 그것을 욕망하고 마침내 쾌락에 빠집니다. 바라문이여, 이것이야말로 청정한 삶이 파괴되고 균열되고 잡되고 더럽혀지고 때묻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적 교섭의 굴레에 묶인, 청정하지 못한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한 삶을 통해서는 태어남, 늙음, 죽음, 슬픔, 비탄, 고통, 불만, 절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나는 말합니다...
또한 여인과 함께 농담하고, 희롱하고, 유희합니다. 그는 그것에 유혹되고 그것을 욕망하고 마침내 쾌락에 빠집니다. 바라문이여, 이것이야말로 청정한 삶이 파괴되고 균열되고 잡되고 더럽혀지고 때묻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적 교섭의 굴레에 묶인, 청정하지 못한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한 삶을 통해서는 태어남, 늙음, 죽음, 슬픔, 비탄, 고통, 불만, 절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나는 말합니다...
또한 여인의 눈을 자신의 눈으로 관찰하고 응시합니다. 그는 그것에 유혹되고 그것을 욕망하고 마침내 쾌락에 빠집니다. 바라문이여, 이것이야말로 청정한 삶이 파괴되고 균열되고 잡되고 더럽혀지고 때묻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적 교섭의 굴레에 묶인, 청정하지 못한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한 삶을 통해서는 태어남, 늙음, 죽음, 슬픔, 비탄, 고통, 불만, 절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나는 말합니다...
또한 담장 너머나 성벽 너머 들려오는 웃거나 이야기하거나 노래하거나 우는 여인의 소리를 듣습니다. 그는 그것에 유혹되고 그것을 욕망하고 마침내 쾌락에 빠집니다. 바라문이여, 이것이야말로 청정한 삶이 파괴되고 균열되고 잡되고 더럽혀지고 때묻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적 교섭의 굴레에 묶인, 청정하지 못한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한 삶을 통해서는 태어남, 늙음, 죽음, 슬픔, 비탄, 고통, 불만, 절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나는 말합니다...
또한 예전에 여인과 함께 웃고, 이야기하거나 유희했던 기억을 떠올립니다. 그는 그것에 유혹되고 그것을 욕망하고 마침내 쾌락에 빠집니다. 바라문이여, 이것이야말로 청정한 삶이 파괴되고 균열되고 잡되고 더럽혀지고 때묻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적 교섭의 굴레에 묶인, 청정하지 못한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한 삶을 통해서는 태어남, 늙음, 죽음, 슬픔, 비탄, 고통, 불만, 절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나는 말합니다...
또한 장자의 아들이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의 대상을 갖추고 구비하여 즐기는 것을 봅니다. 그는 그것에 유혹되고 그것을 욕망하고 마침내 쾌락에 빠집니다. 바라문이여, 이것이야말로 청정한 삶이 파괴되고 균열되고 잡되고 더럽혀지고 때묻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적 교섭의 굴레에 묶인, 청정하지 못한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한 삶을 통해서는 태어남, 늙음, 죽음, 슬픔, 비탄, 고통, 불만, 절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나는 말합니다...
또한 어떤 신들의 무리가 되는 것을 서원하여 ‘이러한 규범이나 금기나 고행이나 청정한 삶을 통해서 신이나 천상계의 한 존재가 되겠다.’라고 청정한 삶을 산다면, 그는 그것에 유혹되고 그것을 욕망하고 마침내 쾌락에 빠집니다. 바라문이여, 이것이야말로 청정한 삶이 파괴되고 균열되고 잡되고 더럽혀지고 때묻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적 교섭의 굴레에 묶인, 청정하지 못한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한 삶을 통해서는 태어남, 늙음, 죽음, 슬픔, 비탄, 고통, 불만, 절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나는 말합니다...
바라문이여, 이러한 일곱 가지 성적 교섭의 굴레 가운데 각각의 성적 교섭의 굴레가 자신 안에서 끊어버려진 것을 내가 보자마자, 각각의 신들의 세계, 악마들의 세계, 하느님들의 세계, 성직자와 수행자들, 그리고 왕들과 백성들과 그 후예들의 세계에서 나는 위없이 바르고 원만한 깨달음을 바르고 원만하게 깨달았다는 것을 선언했습니다. 나에게 ‘나에게 마음에 의한 해탈은 흔들림이 없다. 이것이 최후의 태어남이며, 다시는 윤회하지 않는다’라는 앎과 봄이 생겨난 것입니다..
*번역출처 전재성 박사 <생활속의 명상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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