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뇌에 대하여
번뇌는 어떻게 정의되며 그 기능은 무엇일까요? 빨리어로는 아사와 asava, 한자로는 루 漏, 흘러나와서 삶을 오염시킨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될 듯싶습니다. 탐진치 貪瞋痴 3독을 대표적인 번뇌로 얘기할 수 있겠고, 경우에 따라서 5가지 장애, 7가지 저류 底流, 10가지 족쇄(5하분결, 5상분결) 등으로 구분짓기도 합니다. 12연기에서는 무명 無明의 조건인 번뇌를 욕루 慾漏, 유루 有漏, 무명루 無明漏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욕루는 소유를 동력으로 하는 욕계 삶의 번뇌, 유루는 ‘나는 있다’라는 착각을 동력으로 하는 색계, 무색계의 번뇌, 무명루는 3계 5도인 중생계를 유지시키는 삶의 가장 근본적인 번뇌인 무지 無知라 하겠습니다.
이러한 번뇌는 어떠한 조건에서 생성되는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탐욕과 성냄은 감성적인 범주이고, 어리석음은 이지적인 범주임에는 분명합니다. 번뇌의 조건이 무명이기에 무명의 성품과 기능이 무엇인지 확인해 보아야 합니다. 무명은 경전에 따르면, 사성제를 모르는 것이라 합니다. 사성제는 삶이 형성되고 전개되는 근본이치인 연기법과 그 이치에 따라 생멸하는 모든 존재들의 보편적 성품인 무상, 고, 무아 즉 3법인을 또한 품고 있습니다. 4성제와 12연기, 3법인은 불교 교학의 전부라 해도 무리가 아닙니다. 한마디로 부처님 가르침에 무지한 것을 무명이라 하는 것이겠죠..
번뇌와 무명은 상호의존적 조건입니다. 그들은 지혜를 무력하게 만들고, 마음을 오염시키는 근원입니다. 무명은 색수상행식 오온 가운데 어디에 자리하고 있을까요? 바로 상 想입니다.
인지 또는 지각이라 불리는 산냐 sanna, 想은 언어와 개념, 표상(이미지) 등에 관련된 작용을 특징으로 합니다. 무명으로 인하여 인지가 왜곡되고 굴절되고 변형, 전도되는 수준에 따라서 삶의 질이 달라집니다. 제법의 보편적 성품인 무상. 고. 무아를 항상. 락. 자아로 이해하고 삶을 꾸려나가는 까닭에 범부 중생의 삶이 윤회의 수렁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죠. 이 인지를 바로 세워야 삶의 풍경이 속살을 드러냅니다. 이러한 인지가 병들어서 번뇌가 생성됩니다.
인간의 감각기관, 즉 주관이 객관인 대상을 경험하고 苦(즐거움), 樂(괴로움), 舍(평온) 중 하나의 느낌을 그 결과로 갖습니다. 인지가 왜곡되어 있는 까닭에 고는 성냄으로, 락은 탐욕으로, 사는 평온 또는 이도저도 아닌 어중간한 느낌으로 전환합니다. 3독인 탐진치의 탄생입니다. 마음은 이러한 느낌와 인지를 조건으로 하기에, 탐욕에 물든 마음, 성냄에 물든 마음, 어리석음에 물든 마음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번뇌의 생성과 소멸은 이렇게 인지와 큰 관련이 있습니다. 번뇌를 멀리하고 조금씩 덜어내는 정도에 따라 병든 인지가 제자리를 찾고, 지혜가 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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