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심과 멧돼지 / 조영관
한 사람을 사랑하기가 이리 힘든 것은
내 안의 깊은 근심 때문이다, 라고
썼다가 지운다.
이를테면 이러한 우울이란 얼마나 맑고 뜨겁고 쾌한 것인가
그래서 나, 그러한 쾌함이
질박하고 넉넉할 수만 있다면
그 사랑이 얼마나 장엄한 것일 것인가, 라고 썼다가
또 지운다.
장엄하지 않으면 또 어쩔 것인가.
멧돼지처럼 진퇴를 모르고
앞으로만 달려가는 그 외로운 질주들
그래서, 나 감히 쓴다.
어떤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너만을,
이 문장 위에서 잠시 나는 숨이 가쁘다.
그건 또 얼마나 컴컴한 벼랑일 것인가
영원함을 믿었던 그것으로, 솔직하다는 것으로
힘들었던
그 많은 날들은
그래서, 나, 내 사랑은 근심이거나 통속이거나, 라고 쓰다가,
이렇게 쾌한 우울 속에 있는 내가 바로 너이기에
너를 자유롭게 놓아주는 것,
그래서 사랑은 너와 나 사이 거대한 여백,
불 같은 침묵이라고만 쓰려다가
놓는 것, 내 마음의 경계가 또 가엾어
고개를 저으며 나는 쓴다.
보고프다, 그냥 보고프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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