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장. 텅 비어 있되 다함이 없고>
天地不仁 以萬物爲芻狗 聖人不仁 以百姓爲芻狗 天地之間其猶槖籥乎 虛而不屈 動而愈出 多言數窮 不如守中
하늘과 땅은 어질지 않고 만물을 짚으로 만든 개처럼 취급할 따름이다. 성인 또한 어질지 않으며, 백성을 짚으로 만든 개처럼 여긴다. 하늘과 땅 사이는 풀무와도 같다. 텅 비어 있되 다함이 없고, 움직이면 더욱더 내놓는다. 말이 많으면 도리어 궁해지며, 중심을 지키는 것이 좋다.
天地不仁 以萬物爲芻狗 聖人不仁 以百姓爲芻狗(천지불인 이만물위추구 성인불인 이백성위추구)
인(仁)은 하늘이 부여한 인간의 도덕적 본성 즉 사랑이며, 仁을 통해 예(禮)를 회복해야 한다고 공자는 말한다. 맹자(孟子)는 남의 불행을 외면하지 못하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의 궁극적 완성태, 朱子(주자)는 仁을 性으로 여기고 사랑을 실현하는 근본 이법으로 설명한다. <주역 설괘전(說卦傳)>에서는 “昔者聖人之作易也 將以順性命之理 是以立天之道曰陰與陽 立地之道曰柔與剛 立人之道曰仁與義(옛적에 성인이 역을 지음은 성명의 이치에 순하고자 함이니, 이로써 하늘의 도를 세움을 가로되 음과 양이요, 땅의 도를 세움을 가로되 유와 강이요, 사람의 도를 세움을 가로되 인과 의니)”라 풀이한다. 즉 윤리도덕의 근본 법칙으로 仁과 義를 설명한다.
그러나 노자는 이러한 태도를 모두 유위로 보고 전면적으로 부인한다. 도덕적 가치판단은 모두 상대적인 분별심에서 비롯하는 것이므로, 自然의 道에 위배되는 것이다. 빛은 만물 모두에게 고루 비춰진다. 공기 또한 마찬가지이다. 道는 이렇듯 누구를 더 사랑하고 덜 사랑하지는 않는다. 모두를 제사 때 쓰고 버리는 지푸라기 개로 여길 따름이다.
天地之間其猶槖籥乎 虛而不屈 動而愈出 多言數窮 不如守中(천지지간기유탁약호 허이불굴 동이유출 사언수궁 불여수중)
하늘과 땅 사이를 ‘풀무’로 묘사하여, 道의 역동적 성격을 강조하고 있다. <도덕경>에서는 말이 많음[多言]에 대해서 매우 경계하고 여러 곳에서 되풀이해서 충고한다. 앞서 2장에서의 ‘말 없는 가르침’, 56장에서의 “아는 자는 말하지 않고,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한다(知者不言 言者不知)”……. 道는 논리적 사변이나 합리적 추론으로는 체험할 수 없으며, 다만 직관과 체험의 영역인 것이다. 이는 禪家의 태도와도 일맥상통한다. 임제(臨濟) 선사의 한마디 외침 “할(喝)!”, 덕산(德山) 선사의 몽둥이 찜질[棒], 침묵[良久]은 그 좋은 예이다.
부처께 한 외도(外道)가 와서 여쭈었다.
“말씀 있음도 묻지 않고 말씀 없음도 묻지 않습니다.”
부처께서 한참을 묵묵히 있으니, 외도가 찬탄하며 말하였다.
“부처께서 대자대비로 저의 미혹한 구름을 열어젖혀 저를 道에 들게 하셨습니다.”
외도가 물러간 뒤 제자 아난이 부처께 여쭈었다.
“외도가 무엇을 증득하였기에 道에 들었다고 말하는 것인지요?”
부처께서 이르시기를,
“세상의 좋은 말은 채찍 그림자만 보아도 달리는 것과 같느니라.”
儒家에서는 ‘喜怒哀樂之未發謂之中 發而皆中節謂之和’라 하여, 희노애락의 감정이 드러나지 않은 상태를 中이라 하고, 일어나면 절도에 맞는 것을 和라 하였다. 이는 세간의 유위법이므로, 여기서의 中은 상대적 차별심과 분별지를 여읜 佛家의 中道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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