老子와 똥막대기(도덕경 해설)

도덕경 10장. 걸림이 없는 삶

slowdream 2007. 8. 10. 17:21
 

<제 10장. 걸림이 없는 삶>


載營魄抱一 能無離乎 專氣致柔 能嬰兒乎 滌除玄覽 能無疵乎 愛民治國 能無爲乎 天門開闔 能爲雌乎 明白四達 能無知乎 生之 畜之 生而不有 爲而不恃 長而不宰 是謂玄德


혼백을 하나로 껴안고 떨어져나가지 않도록 할 수 있는가? 氣를 오롯이 부드럽게 하여 갓난아기와 같을 수 있겠는가? 마음의 거울을 닦아 티끌이 없게 할 수 있는가? 백성을 사랑하고 나라를 다스림에 무위로써 할 수 있는가? 천문을 열고 닫음에 여인과 같을 수 있겠는가? 툭 트여 걸림이 없음에 무지의 경지에 이를 수 있겠는가? 낳고 기른다. 낳되 소유하지 않고 이루게 하되 의지하지 않고 기르되 다스리지 않는 바 이를 신묘한 德이라 일컫는다. 



載營魄抱一 能無離乎 專氣致柔 能嬰兒乎(재영백포일 능무리호 전기치유 능영아호)

 

  혼(魂)은 양(陽)으로 영혼 또는 정신, 백(魄)은 음(陰)으로 육신을 가리킨다. 抱一은 陰과 陽을 함께 품은 상태로 바로 태극(太極)이자 道의 세계를 말한다. 專은 ‘오로지, 홀로, 하나된’의 뜻인 바 갓난아기는 抱一과 마찬가지로 道의 비유이다. 상대적이고 이분법적인 가치에 사로잡히지 않고, 有에서 無로, 無에서 有로의 되돌아감이 바로 抱一이다. 그런 즉, 道를 섬기는 무위를 실천하자는 뜻에 다름 아니다. 道이자 무위를 실천하는 성인의 비유인 갓난아기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기는 하지만, 선악과 시비를 가리지 않는다.

 

  佛家에 전해 내려오는 화두집 <벽암록>에도 이와 같은 비유가 나온다.

“道를 배우는 사람도 이 갓난아기와 같아져서 영욕(榮辱)과 공명(功名), 불편한 감정과 좋은 경계에 물들지 않으며, 눈으로 형체를 보되 장님과 같고 귀로 소리를 듣되 귀머거리와 같으며 참으로 어리석기 그지 없어서 그 마음이 움직이지 아니함이 수미산과 같다.” 


滌除玄覽 能無疵乎 愛民治國 能無爲乎 天門開闔 能爲雌乎 明白四達 能無知乎(척제현람 능무자호 애민치국 능무위호 천문개합 능위자호 명백사달 능무지호)

 

  티끌[疵]은 곧 알음알이[知]로 분별적 지식을 가리킨다. 이러한 알음알이 즉 번뇌와 망념으로 인해 세상의 속살을 제대로 들춰보지 못한다는 얘기이다. 빗발이 뿌리는 창을 통해 일그러진 바깥 풍경을 바라보는 것과 같다 하겠다. 天門開闔 能爲雌乎는 道를 펼침에 여인처럼 무위의 行을 할 수 있느냐는 뜻이다. 여인은 아들[陽]이라서 이쁘고 딸[陰]이라서 미워하지 않는다. 그녀에게는 모두 소중한 자식일 따름이다. 이렇듯 무차별한 무위, 不仁의 仁를 행하는 여인을 통해서 道는 펼쳐진다. 6장에서의 ‘玄牝之門 是謂天地根’과 같은 맥락이다.

 

  선불교의 5조 홍인(弘忍) 대사가 제자들을 불러 모아놓고 말씀하셨다.

“세상사람의 나고 죽는 일이 크거들 너희들은 종일토록 공양을 하며 다만 복밭만을 구할 뿐 나고 죽는 괴로운 바다를 벗어나려 하지 않는구나. 너희들의 자성이 미혹하면 복의 문이 어찌 너희를 구제할 수 있겠느냐? 지혜로운 자는 본래의 성품인 반야의 지혜로써 게송을 지어 가져오너라. 만약 큰 뜻을 깨친 자가 있으면 그에게 법과 가사[依]를 부촉하여 육대 조사가 되게 할 터이니, 속히 서둘러라.”

  그날 밤 사람들 눈을 피해서 신수가 남쪽 복도 벽 위에 게송을 써놓았다.


身是菩提樹   몸은 보리의 나무요

心如明鏡臺   마음은 밝은 거울과 같나니

時時勤拂拭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莫使有塵埃   티끌과 먼지 묻지 않게 하리


  신수의 게송임을 눈치채고 홍인대사가 신수를 불러 말씀하셨다.

“네가 지은 이 게송은 소견은 당도하였으나 다만 문앞에 이르렀을 뿐이며 아직 문안으로 들어오지는 못하였다. 범부들이 이 게송을 의지하여 수행하면 타락하지는 않겠지만 위 없는 깨달음은 결코 얻지 못할 것이다. 모름지기 문안으로 들어와야 자기의 본성을 보느리라.”

  절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탓에 방앗간에서 일하던 혜능은 일자무식인지라 게송을 읽지 못했다. 그래서 한 동자승에게 동행하여 게송을 읽어주기를 부탁했다. 신수의 게송을 들은 혜능은 그 자리에서 그 뜻을 간파했다. 혜능이 동자승에게 자신의 게송을 벽에 써달라고 부탁했다.


菩堤本無樹   보리는 본래 나무가 없고

明鏡亦無臺   밝은 거울 또한 받침대 없네

佛性常淸淨   부처의 성품은 항상 깨끗하거늘

何處有塵埃   어느 곳에 티끌과 먼지 있으리오


心是菩提樹   마음은 보리의 나무요

身爲明鏡臺   몸은 밝은 거울의 받침대라

明鏡本淸淨   밝은 거울은 본래 깨끗하거늘

何處染塵埃   어느 곳이 티끌과 먼지에 물들리오

 

  게송을 본 홍인대사가 혜능을 새벽에 몰래 불러 법과 가사를 부촉하며 6조로 인가했다.


生之 畜之 生而不有 爲而不恃 長而不宰 是謂玄德(생지 축지 생이불유 장이부재 시위현덕)

 

  德이란 道가 현상계에서 구현될 때 드러나는 구체적인 힘으로 무위. 2장의 뒷부분과 중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