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산의 진짜 초상화(盤山眞影)
반산보적 禪師가 入寂에 앞서 學人들에게 自身의 진영(眞影)을 그려오라 했다. 弟子들이 精誠을 다해 各自 사가(師家)의 肖像畵를 그려다 바쳤다. 그러나 盤山은 자신의 얼굴과 똑같은 肖像이 없다며 모두 퇴짜를 놓았다. 이때 首座 진주보화가 ‘제가 스님 진짜 얼굴을 그리겠습니다.’ 하고 큰 소리를 치고 나왔다. 진주보화화상은 하북성 일대를 떠돌아다니면서 行化를 펼쳤다. 居處는 언제나 墓地였다. 生沒年代는 未詳이다.
보화는 盤山앞에 나와 서더니 느닷없이 물구나무를 서서 한바퀴를 빙 돌았다. 그러자 盤山은 ‘이 사나이야말로 내 眞影을 그렸다’ 손뼉을 치며 기뻐하고 ‘이 친구는 뒷날 미친 놈처럼 사람을 敎化하며 世上을 시끄럽게 할 게 틀림없다’ 고 말했다.
어린애 장난 같기도 하고 미친 사람의 狂氣 發作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이 같은 風光은 禪의 基礎를 이루는 주춧돌이다. 속은 멀쩡하면서도 겉으로만 미친 척하는 風狂, 佯狂, 風顚은 達磨로부터 시작된 禪의 低流이며 本質이기도 하다. 아리스토텔레스도 “卓越한 精神에는 다소나마 狂氣가 섞여 있지 않을 수 없다”고 하였다. 어쨌든 보화는 古今에 내놓아 손색이 없는 禪門 風光의 最高峰이다.
‘盤山眞影’이라는 話頭는 禪思想의 바탕을 이루는 風狂哲學과 사자상승의 心印을 直指한 逸話다. 盤山이 要求한 자신의 얼굴과 똑같은 眞影이란 있을 수 없다. 제아무리 뛰어난 畵家라도 사람의 얼굴을 솜털 하나까지 빠뜨리지 않고 살아 있는 生生한 模襲으로 그릴 순 없다. 따라서 반산이 바란 것은 제자들이 繼承한 師家의 家風. 정법안장 禪思想이 어떤 것인지를 드러내 보이라는 뜻이었다.
보화의 물구나무는 ‘스님의 境界와 堅持를 이렇게 내 것으로 해버렸습니다.’ 라는 ‘行動言語’라 할 수 있다.*(물구나무는 그림자인 현상계를, 원은 진여본체를 상징? 현상과 본체가 둘이 아님을 드러냄) 禪은 筆舌로써 說明할 수 없는 제일의(第一義 : 佛法)을 表現하고자 할 때 이처럼 곧장 狂氣어린 行動言語를 구사한다. 이는 旣存의 固定觀念과 패러다임을 打破하려는 몸부림이기도 하다. 臨濟의 境遇, 人間의 槪念的 認識과 傳統的 權威를 두들겨 부수기 위해 一生동안 學人들에게 몽둥이질과 고함질을 해댔다.
雪峰義存禪師(822-908)와 한 중이 주고받은 거량(擧揚)을 적어본다
묻는다 : 옛날 승유가 왜 지공화상의 肖像畵를 그릴 수가 없었습니까?
답한다 : 붓끝이 종이에 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승유는 어느 날 지공의 肖像畵를 그리라는 무제의 御命을 받았다. 그러나 마음이 영 安定 되질 않아 어디에 붓을 대야 할지 가늠이 안 되었다. 이를 보다 못한 지공화상이 손가락으로 자신의 얼굴을 헤집고 열어 제치니 11면 觀音菩薩이 나왔다. 이렇게 그리면 된다고 일렀으나, 승유는 지공의 얼굴이 너무나도 慈悲롭고 秀麗해 끝내 그 모습을 그려낼 수 없었다. 결국 見性한 道人의 얼굴, 즉 佛法이란 具體的 形象이 없기 때문에 그 肖像畵를 그릴 수 없다는 얘기다.
어떤 學人이 趙州禪師의 肖像畵를 그렸다. 趙州는 肖像畵를 보더니 “만약 나를 닮았다면 나를 때려 죽여라. 만일 닮지 않았다면 불태워 버려라“ 하고 詰亂했다. 아주 極端的이고 斷乎하다. 弟子가 스승의 堅持를 참으로 자신의 것으로 消化해 가지고 있다면 스승은 죽어도 좋다. 반대로 스승의 人格과 道에 미치지 못한 弟子라면 죽여 버려야 한다. 이게 바로 趙州의 호통 속에 담겨 있는 激烈한 뜻이다.
이런 이야기도 있다.
묻는다 : 화상께서 入寂하신 후 어떤 사람이 네 스승의 肖像畵를 그릴 수 있냐고 물어오면 어떻게 답해야 합니까?
답한다 : 그저 ‘그것 그대로다’ 라고만 대답해라.
조동종 개산조인 동산양개와 그의 스승 운암담성선사(780-841)의 問答이다. 동산은 스승의 대답을 理解하지 못한 채 계속 疑問을 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개울을 건너다 물속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를 보는 순간 “아” 하고 그 뜻을 깨우치고 다음의 悟道頌을 읊었다
절대로 남에게 구하지 말라
멀고멀어 나와는 성글어진다.
내 이제 홀로 가노니
곳곳에서 그를 만나게 된다.
나는 바로 지금의 ‘나’ 이지만
나는 이제는 ‘그’ 가 아니다.
이렇게 깨달아 알아야
여여한 진리에 계합하리라.
동산의 이 開悟詩는 歷代로 손꼽혀온 有名한 禪詩의 하나다. 偈頌의 核心은 셋째구절의 ‘나’ 와 ‘그’다. ‘나’는 主體的 自己(진아 : 眞我)를 말하고 ‘그’는 그림자인 허깨비의 ‘나’다. 자신의 實體를 發見한 견성(見性)을 아주 簡明하게 드러냈다. 禪思想의 創意性 尊重과 自律性 力說은 오늘날에도 아무리 强調해도 지나침이 없는 價値요 德目이다. 이것이 바로 禪問答을 東門西答의 맹랑한 옛 이야기로만 置簿해 버릴 수 없는 소이(所以)이다.
禪이 거듭 强調하는 獨創性과 自律性의 예를 잠시 살펴보자.
潙仰宗 開山祖인 潙山靈祐의 사제(師弟) 장경대안선사(793-883)는 다음과 같은 獅子吼를 토해냈다.
“내가 潙山에 기거한 지 30년, 潙山의 밥을 먹고 潙山에 똥을 누웠지만, 潙山의 禪만은 배우지 않았다.”
德山宣鑑宣師의 弟子이지만 조동종 개산조 동산양개선사 밑에서 오랫동안 寄居했던 암두전할도 역시 獨創性을 强調했다.
“나는 동산을 參禮했지만 동산을 따르지 아니하며, 또 德山의 法을 이어받았으나, 德山을 따르지 아니한다. 그러나 德山和尙은 잊을 수 없는 사람이다.”
禪은 模倣을 絶對 禁忌視한다. 성불(成佛)이라는 一大事도 오직 自律性 위에서만 可能하다고 斷言한다. 그래서 禪宗은 스승이 제자에게 法을 認可할 때 獨創性이 없는 博識한 지해(知解)나 模倣 따위는 ‘0점 처리’를 해버린다. 사가(師家)가 弟子에게 法統을 넘겨줄 때 學人이 스승보다 實力이 높고 獨自的 創意性을 갖추지 않으면 絶對 認可하지 않는 것이 철저한 不文律의 禪林 傳統이다.
話頭 ‘盤山眞影’ 이 전해 주는 한 소식은 바로 이러한 사자상승(師資相承)의 强調다. 弟子는 信賴를 바탕으로 스승의 心印을 이어 받는다. 그 信賴가 確實한 經驗을 통해 얻는 것이라면 弟子는 언제나 스승의 精神(메시지)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무슨 肖像畵가 必要하고 說明이 必要하단 말인가. 弟子가 곧 스승의 ‘肖像畵’ 이며 스승의 ‘정법안장’ 이 아니겠는가. 弟子는 스승의 禪思想 그 自體인 것이다. 아버지를 꼭 빼닮은 아들의 경우 굳이 病院에 가서 血液型 檢査를 해 親子 確認을 할 必要가 없다. 아버지를 빼닮은 아들이야말로 어떤 畵家가 그린 아버지의 肖像畵보다도 正確하게 잘 그려진 肖像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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