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8장. 나라가 어지러우니 충신이 나오고>
大道廢 有仁義 慧智出 有大僞 六親不和 有孝慈 國家昏亂 有忠臣
대도가 사라지니 인의가 나오고, 지혜가 없으니 거짓과 위선이 난무한다. 가족이 불화를 빚으니 효니 자니 하는 것이 속출하고, 나라가 어지러우니 충신이 나온다.
大道廢 有仁義 慧智出 有大僞 六親不和 有孝慈 國家昏亂 有忠臣(대도폐 유인의 혜지출 유대위 육친불화 유효자 국가혼란 유충신)
지혜는 물론 유위의 지혜로 이분법적인 분별지를 가리킨다. 육친은 부모ㆍ형제ㆍ처자이다. 진실보다는 거짓이 판을 치는 세상일수록 역설(逆說)과 반어(反語)는 좀더 설득력 있고 파괴적인 힘을 갖는다. “악은 그늘을 꺼리고 선은 햇볕을 꺼린다. 그러므로 드러난 악은 재앙이 적고 숨은 악은 재앙이 깊으며, 드러난 선은 공이 적고 숨은 선은 공이 크다.”이 또한 <채근담>에 담긴 명언인데, 반어와 역설의 힘을 여실히 보여준다 하겟다.
흔히 ‘아이러니(irony)’라고도 표현되는 이러한 기술의 대가(大家)로 소크라테스와 김삿갓이 빠질 수 없다. “어쨌든 결혼은 하는 것이 좋다. 양처(良妻)를 얻으면 행복할 것이고, 악처(惡妻)를 얻으면 철학자가 될 테니.”소크라테스의 유명한 독설이다. 소크라테스는 무지를 가장해서 지적인 체하는 논적으로 하여금 모순에 빠지게 하여 무지를 고백하게끔 하는 화법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소크라테스 또한 부처나 예수, 동양의 현인들처럼 스스로는 기록을 남기지 않았으며, 제자 플라톤이 스승의 말씀을 모아 <소크라테스의 변명>이라는 책을 펴냈다. 조선시대의 방랑시인 김삿갓 또한 지배계급의 위선과 가식, 고약한 인심과 뒤틀린 세태를 해학과 풍자로 신랄하게 벌거벗겼는데, 그의 작품 가운데 그나마 분위기가 부드러운 시 한 수를 옮겨본다.
彼坐老人不似人 저기 앉은 저 노인은 사람 같지 않으니
疑是天上降眞仙 아마도 하늘 위에서 내려온 신선일 테지
其中七子皆爲盜 여기 있는 일곱 아들은 모두 도둑놈이니
偸得碧桃獻壽筵 서왕모의 선도 복숭아를 훔쳐다 환갑 잔치에 바쳤다네
환갑 잔칫집에 들른 김삿갓이 첫 구절을 읊자 자식들 표정이 울그락불그락하다가 둘째 구절을 읊자 환히 피었다. 그러다 셋째 구절을 읊자 화를 냈는데, 넷째 구절을 읊자 태도가 돌변해 흡족해 하는 것이었다. 장자의 우화 ‘조삼모사(朝三暮四)’를 연상시킨다. 중국의 설화에 나오는 여신 서왕모(西王母)가 기르는 선도 복숭아나무는 3천 년에 한번 꽃이 피고 또 3천 년만에 열매가 열리는데, 이 복숭아를 먹으면 불로장생한다 하였다.
儒家 도덕론의 정수인 인의와 예는 비단 노자뿐만 아니라 여러 계층의 지식인들에게서 비난을 받았는데, 전한(前漢)의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도 그 하나이다.
“무릇 예(禮)란 지체 높음과 낮음, 귀하고 천함을 차별하기 위한 것이며, 의(義)는 군신과 부자, 형제, 부부, 친구 사이를 화합하기 위한 것이다. 물을 한군데로 합하면 고기들이 서로 잡아먹으며, 흙을 쌓으면 굴을 파는 짐승이 생긴다. 예의는 가식과 거짓이 생기는 근본이다. 재를 불면서 눈에 티가 들어가지 않기를 바라고, 물을 건너면서 옷이 젖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얼토당토 않다.”
그렇다면, 성인과 현자들이 세상에 나오는 까닭은 무엇일까? 하는 의심을 품지 않을 수 없다. 당연한 결론이지만, 세상이 어지럽기 때문이다. 법달이라는 스님이 <법화경(法華經)> 공부를 7년이나 했으나 이치를 깨닫지 못하자, 6조 혜능 선사가 가르침을 주었다.
“법달아, 경에 말씀하기를 ‘모든 부처님과 세존께서는 오직 일대사인연으로 세상에 나타나셨다(一大事因緣出現於世)’고 하였거늘, 이 법을 어떻게 알고 어떻게 닦을 것이냐? 사람의 마음이 생각을 하지 않으면, 본래의 근원이 비고 고요하여 삿된 견해를 떠난다. 이것이 곧 일대사인연이니라. 안팎이 미혹하지 않으면 곧 양변(兩邊)을 떠난다. 밖으로 미혹하면 모양에 집착하고 안으로 미혹하면 공(空)에 집착한다. 모양에서 모양을 떠나고 공에서 공을 떠나는 것이 곧 미혹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법을 깨달아 한생각에 마음이 열리면 세상에 나타나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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