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1장. 예로부터 그 이름 사라진 적 없어>
孔德之容 惟道是從 道之爲物 惟恍惟惚 惚兮恍兮 其中有象 恍兮惚兮 其中有物 窈兮冥兮 其中有精 其精甚眞 其中有信 自古及今 其名不去 以閱衆甫 何以知衆甫之狀哉 以此
큰 德은 모든 것을 받아들이며 道는 오로지 그 德을 펼칠 따름이다. 그럼으로써 道는 만물이 된다. 어슴프레하고 흐릿할 따름이다. 흐릿하고 어릿함이여, 그 가운데 상이 있다. 어릿하고 흐릿함이여, 그 가운데 물이 있다. 그윽하고 어두움이여, 그 가운데 정수가 있으며, 정수는 지극히 참되어, 그 가운데 믿음이 있다. 예로부터 그 이름 사라진 적이 없어 만물의 내력을 알 수 있다. 만물의 근원을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런 까닭에서이다.
孔德之容 惟道是從 道之爲物 惟恍惟惚(공덕지용 유도시종 도지위물 유황유홀)
道와 德의 성품을 從과 容으로 설명하고 있다. 容은 차별없이 모든 것을 품는다는 뜻으로 德의 성품이며, 從은 기꺼이 내놓는다는 뜻으로 道의 성품이다. 즉, 道는 德을 펼치고 德은 무위로써 만물을 품고 기른다는 의미이다. 결국 만물은 道와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가 없는 그런 관계임을 말한다. 道가 만물이며, 만물이 道다. 道는 존재의 안감이기에. 체용론(體用論)의 입장에서 풀이하자면, 道는 체이며 德은 용으로 ‘본체를 좇아 현상이 펼쳐지며 현상을 거두고 본체로 돌아간다(從體起用 攝用歸體)’일 것이다.
‘돌아간다’는 표현을 즉물적으로 이해해서는 안 되며, 이는 서로가 서로의 근원이라는 얘기에 다름 아니다. 즉 緣起法의 표현에 다르지 않다. 화엄의 이사무애법계(理事無碍法界)가 바로 이것이다. 이러한 道德의 모습은 뭐라 형용할 수 없어 다만 황홀한 따름이다. 1장에서와 같이 그저 신묘하고 신묘할 뿐이라는 것이다.
惚兮恍兮 其中有象 恍兮惚兮 其中有物 窈兮冥兮 其中有精 其精甚眞 其中有信(홀혜황혜 기중유상 황혜홀혜 기중유물 요혜명혜 기중유정 기정심진 기중유신)
象이란 질박한 통나무처럼 어떤 특정한 有로 분화되기 이전의 無를 가리킨다. 그런 즉 物은 有의 존재를 가리킨다. 道와 德의 관계는 황홀한데, 無와 有의 관계는 홀과 황이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다. 이는 無와 有의 순환작용을 가리키는 것으로 화엄의 사사무애법계(事事無碍法界)와 다름 아니다. 비유하건대, 道와 德의 관계는 존재의 안감과 존재의 관계라면, 無와 有의 관계는 존재의 앞면과 뒷면이랄 수 있다. 정수란 지극히 참된 알맹이인데, 곧 진리의 비유이다. 信은 ‘믿음’또는 ‘신호’로 해석이 가능하다. 믿음이란 상호간에 작용하는 것으로 곧 無는 有로 有는 無로 순환한다는 그런 진리, 다시 말해 緣起를 뜻하는 것이다. 신호 또한 쌍방간에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有과 無가 상대적 존재임을 가리키는 것에 다름 아니다.
自古及今 其名不去 以閱衆甫 何以知衆甫之狀哉 以此(자고급금 기명불거 이열중보 오하이지 중보지상재 이차)
名은 有와 無의 현상계, 衆甫는 만물의 내력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결국 현상계는 불생불멸, 무시무종하기에 만물의 내력을 스스로 밝혀주고 있다는 뜻이다. 道를 선험적(先驗的)이라 하고 현상(現象)을 경험적(經驗的)이라 하는 것은 인식론적인 측면에서 현상을 통해 道를 확인할 수 있다는 얘기이지, 존재-가치론적인 측면에서 우열을 논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佛家의 반야바라밀(般若婆羅蜜)을 흔히 ‘도피안(渡彼岸)의 지혜’라 옮기는데, 즉 생멸의 이쪽 언덕을 떠나 보리(깨달음)와 열반(번뇌망상이 없는 평화)의 저쪽 언덕으로 건너가는 지혜이다. ‘다다르다, 건너다’라는 표현은 방편으로, 실상 저쪽 언덕에 가서 보니 결국 이쪽 언덕이라는 얘기에 다름 아니다. 여기서 반야 즉 지혜는 德의 무위행, 피안은 道로 이해해도 무리가 없겠다.
이처럼, 德을 통해서 道를 확인한다는 얘기는 道가 德이고 德이 道라는 얘기이며, 道와 德이 따로 존재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14장에서의‘執古之道 以御今之有 能知古始 是謂道紀(옛 道로써 오늘의 有를 다스린다. 그리하여 옛 시초를 알 수 있으니 이를 道의 벼리라 한다)’와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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