老子와 똥막대기(도덕경 해설)

도덕경 24장. 절름발이 자라

slowdream 2007. 8. 10. 18:58
 

<제 24장. 절름발이 자라와 눈 먼 거북>


企者不立 跨者不行 自見者不明 自是者不彰 自伐者無功 自矜者不長 其在道也 曰餘食贅行 物或惡之 故有道者不處


발돋움하는 사람은 오래 서지 못하고, 가랑이를 벌리는 사람은 걷지 못한다. 스스로 드러내는 사람은 밝지 못하고, 스스로 옳다 하는 사람은 빛나지 못하며, 스스로 자랑하는 사람은 공이 없고, 스스로 뽐내는 사람은 오래 가지 못한다. 道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일들을 먹다 남은 밥찌꺼기와 군더더기 행동으로 여기며 꺼린다. 그러므로 道를 섬기는 사람은 이러한 일에 처하지 않는다.



企者不立 跨者不行 自見者不明 自是者不彰 自伐者無功 自矜者不長(기자불립 과자불행 자현자불명 자시자불창 자벌자무공 자긍자부장) 

 

  22장의 연장선에서 이해하면 되겠다. “스스로를 드러냄이 없으니 밝고, 스스로를 옳다 함이 없으니 빛나며, 스스로 자랑함이 없기에 공이 있고, 스스로 뽐냄이 없으니 오래 간다.”22장에서는 무위의 입장에서 서술한 것이고, 여기서는 유위의 입장일 따름이다. <도덕경>과 佛家의 여러 경전들이 닮은 구석 중 하나는, 이처럼 不, 非 같은 부정사와 비유가 많이 쓰인다는 점이다. 이는 道나 진리 같은 대상은 언어로써 결코 드러낼 수 없으며 다만 직관과 체험의 영역에 속해 있다는 얘기에 다름 아니다. 이름할 수 없지만 윤곽이라도 잡고자 비유로써, 부정의 논법으로써 애쓸 따름이다. 투명인간을 확인하고자 그 옷가지를 한꺼풀씩 벗겨나가는 과정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결국 옷을 벗겨도 투명인간 자체는 확인할 수 없지만. 


其在道也 曰餘食贅行 物或惡之 故有道者不處(기재도야 왈여식췌행 물혹오지 고유도자불처) 

 

  먹다 남은 밥찌꺼기와 군더더기 행위. 비유가 썩 유쾌하지는 않지만, 지름길을 놔두고서 구태여 멀리 돌아갈 까닭이 없다는 뜻이겠다. 佛家에서는 이러한 어리석은 행위를 빗대‘跛鱉盲龜入空谷(파별맹구입공곡-절름발이 자라와 눈 먼 거북이 텅 빈 계곡에 들어간다)’또는‘却差蛙步輾泥沙(각차와보전니사-개구리가 진흙위에서 뛰니 애처롭기 그지없다’라 하며 경책한다.

 

  당나라의 시인 백거이(白居易)는 노장사상(老莊思想)과 불교에 조예가 깊었는데, 장자의‘달팽이 뿔위에서의 싸움’이라는 비유를 인용한 시를 하나 읊어보자.


蝸牛角上爭何事   달팽이 뿔 위에서 다툰들 무엇하리

石火光中寄此身   부싯돌 번쩍이듯 찰라를 사는 몸

隨富隨貧且歡樂   부귀든 빈천이든 그대로 즐길 일

不開口笑是癡人   크게 웃지 않으면 참으로 어리석으리


<對酒(술을 대하고) 二>


‘달팽이 뿔위에서의 싸움’은 천하를 얻고자 미친 듯 치닫는 시대상을 빗댄 일종의 우화이다. 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우주를 품에 안을 생각은 하지 않고, 고작 손바닥 아니 달팽이 뿔위에 지나지 않는 천하를 얻고자 소중한 삶을 낭비하느냐는 비웃음이다. 결국 아무런 소득도 가치도 없는 유위의 삶을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