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6장. 종일토록 수레에서 내리지 않는다>
重爲輕根 靜爲躁君 是以聖人終日行 不離輜重 雖有榮觀 燕處超然 奈何萬乘之主 而以身輕天下 輕則失本 躁則失君
무거움은 가벼움의 근본이며, 고요함은 서두름의 주인이다. 그러므로 성인은 종일 다녀도 무거운 수레에서 떠나지 않는다. 멋진 풍경이 펼쳐져도 편안한 자리에서 초연할 따름이다. 만 대의 전차를 지닌 군주가 어찌 가벼이 행동하겠는가. 가벼이 처신하면 근본을 잃게 되고 서두르면 군주 자리를 잃게 된다.
重爲輕根 靜爲躁君 是以聖人終日行 不離輜重 雖有榮觀 燕處超然(중위경근 정위조군 시위성인종일행 불리치중 수유영관 연처초연)
무거움과 고요함은 무위, 가벼움과 서두름은 유위를 가리킨다. 물론 무위는 절대적 이법인 中道의 실천덕목으로, 유위의 상대법으로서의 무위는 결코 아니다. 나를 버리지 못한 분별과 망상에서 비롯한 유위, 나를 버린 무차별의 無爲[無有爲]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유위와 무위를 모두 떨친 진공묘유(眞空妙有)의 차원에서의 無爲[無無爲, 無不爲]인 것이다. 노자와 부처는 거의 동시대의 인물이며 그 사상사적 궤적이 흡사하나, 외연은 부처가 노자에 비해 훨씬 넓다 하겠다. 실상 노자는 중국의 선불교에 가깝다 할 수 있으며, 불교가 중국에 유입되면서 노장자(老莊子)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하지만 오히려 불교에 의해서 노장자의 위상이 훨씬 강화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도덕경>의 독해에 있어서 유의해야 하는 점이 그 구도를 단순화하는 시각인데, 다른 무엇보다도 불교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노자의 의도가 명확해진다. 일례로, 위의 문장에서 무거움과 가벼움을 근본과 지말, 또는 體와 用으로 읽어 버리면, 기껏해야 소박한 세계관이나 처세학의 수준에 떨어지고 만다. 무거움이 가벼움의 근본인 것이 아니라, 무거움과 가벼움은 서로의 근본이다. 가벼움을 의식한 무거움 또한 상대적인 가벼움만큼이나 가벼운 유위의 세계이다. 노자의 반어와 역설을 통속적인 관점에서 다루면‘개구리가 진흙밭에서 뛰노는 꼬락서니’를 면치 못하는 것이다.
‘종일 다녀도 무거운 수레를 떠나지 않는다’라는 얘기는 곧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黙動靜), 자나깨나 고요하거나 소란하거나 경계에 끄달리지 않고 中道를 잃지 않는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불법은 애써 힘쓸 필요가 없다. 다만 평소에 아무 탈없이 똥 싸고 오줌 누며, 옷 걸치고 밥 먹으며, 고단하면 잠잘 따름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나를 비웃는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안다. 고인이 말했다. ‘밖을 향해 공부하지 말라. 어리석은 자들의 짓일 뿐이다.’가는 곳마다 주인이 된다면, 바로 그곳이 깨달음의 세계이리니(隨處作主 立處皆眞).”
벼락 같은 할(喝)로 유명한 임제 스님의 설법이다. 마조 선사의 ‘평삼심이 도(平常心是道)’와 같은 맥락이리라.
마조 선사의 제자 가운데 대주(大珠) 선사가 있는데, 하루는 선사에게 한 스님이 물었다.
“스님도 수행할 때 공력을 들이십니까?”
“물론이라네.”
“어떻게 공력을 들이시는지요?”
“배고프면 밥 먹고 졸리면 잔다네.”
스님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모든 사람이 다 그러한데 스님은 무엇이 다릅니까?”
“다르고말고. 다른 사람은 밥 먹을 때도 백 가지 걱정을 하고, 잠잘 때도 꿈속에서 천 가지 걱정을 하지. 그게 다른 점이네.”
奈何萬乘之主 而以身輕天下 輕則失本 躁則失君(내하만승지주 이이신경천하 경즉실본 조즉실군)
승(乘)은 4마리 말이 끄는 전차(戰車)라는 뜻이다. 1만 대의 전차를 갖출 수 있는 광대한 영토를 만승지국(萬乘之國)이라 하며, 그 주인을 만승지군(萬乘之君)이라 하였다. 중국 주나라 때의 천자(天子)는 1만 대의 전차를 갖추었으므로 만승은 천자의 호칭이 되었다. 천승(千乘)은 전차 1천 대를 갖춘 제후라는 뜻이며, 그 영지를 천승지국(千乘之國)이라 하였다. 백승지가(百乘之家)는 전차 1백 대를 갖출 수 있는 세도가라는 뜻이다. 輕則失本 躁則失君은 앞 문장의 반복으로, 가벼움에 발목을 잡히고 서두름에 덜미를 잡히면 본분을 잃는다는 뜻이겠다. 3조 승찬(僧璨) 스님 왈, “지혜로운 이는 함이 없거늘 어리석은 이는 스스로 얽매이는도다(智者無爲 愚人自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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