老子와 똥막대기(도덕경 해설)

도덕경 69장. 주인이 되지 말고 손님이 되라

slowdream 2007. 8. 11. 01:44
 

<제 69장. 주인이 되지 말고 손님이 되라>


用兵有言 吾不敢爲主而爲客 不敢進寸而退尺 是謂行無行 攘無臂 扔無敵 執無兵 禍莫大於輕敵 輕敵幾喪吾寶 故抗兵相加 哀者勝矣


병법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주인이 되지 말고 손님이 되라. 한 치 나아가려 하지 말고 한 자 물러나라. 이를 일러 나아감이 없는 나아감, 팔 없이 소매를 걷음, 적 없이 깨부숨, 무기 없이 무기를 움켜쥠이라 한다. 적을 얕보는 것보다 더 큰 화는 없다. 적을 가볍게 여기면 내 보물을 잃는다. 그러므로 서로 겨룰 때에는 슬퍼하는 쪽이 이긴다.



用兵有言 吾不敢爲主而爲客 不敢進寸而退尺 是謂行無行 攘無臂 扔無敵 執無兵(용병유언 오불감위주이위객 불감진촌이퇴척 시위행무행 양무비 잉무적 집무병) 

 

   68장의 부연으로 이 또한 반어와 역설의 자리이다. 주인이 아닌 손님이 됨으로써 진정한 주인이 되며, 한 걸음 물러섬으로써 두 걸음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별로 힘들이지 않고 나아갈 수 있으며, 팔을 걷어부치는 것도 마치 팔 없이 소매만 걷어부치는 것처럼 쉬우며, 저항 없이 적을 쳐부수는 것 같고, 마치 깃털을 쥐듯 가볍게 창이나 칼 같은 무기를 쥘 수 있는 것이다. 주인과 손님, 나아감과 물러섬을 통해 中道를 깨달으면, 삶이 더없이 넉넉해진다는 얘기에 다름 아니다. 주인과 나아감은 有, 손님과 물러섬은 無로 이해해도 되겠다. ‘보물’은 무엇보다도 소중한 목숨을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겠고, 적을 바깥 사물과 경계의 비유로 확인한다면 보물은 67장에서 언급한 삼보 즉 ‘자애ㆍ검약ㆍ앞서지 않음’을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겠다.

 

  벼락 같은 할(喝)로 유명한 임제 선사의 제자 둘이서 서로 마주보고서 할을 외쳤다. 그 광경을 옆에서 지켜본 제자가 임제 선사에게 가서 여쭸다.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습니다. 손님과 주인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임제 선사 왈,

“손님과 주인이 분명하니라.”

  뒷날 광혜(廣慧) 선사가 이 법문을 들어 대중들에게 말하기를,

“말해 보라. 손님과 주인이 있는가 없는가. 있다 하여도 눈 먼 사람이요, 없다 하여도 또한 눈 먼 사람이니,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음은 만 리나 멀리 떨어져 있다. 여기에서 바로 말하면 삼십 방(棒)을 때릴 것이요, 바로 말하지 못하여도 삼십 방을 때릴 것이니, 道 닦는 이가 여기에 이르러서 어떻게 하여야 산승의 함정을 벗어나겠느냐?”

  그리고 1천여 년이 지난 후 성철 스님이 덧붙이기를,

“원수가 아니면 머리를 모으지 않는다. 한 올의 붉은 실을 두 사람이 끄는구나.”


禍莫大於輕敵 輕敵幾喪吾寶 故抗兵相加 哀者勝矣(화막대어경적 경적기상오보 고항병상가 애자승의) 

 

  노자는 가히 반전주의자이자 평화주의자라 일컬을 만하다. 당대의 현실이 얼마나 처참했으면 <도덕경> 곳곳에서 전란의 폐해를 여실히 드러내고 비난했겠는가.

 “작은 군사가 머문 곳에는 가시밭이 돋아나고, 큰 군사가 지나가고 난 자리에는 흉년이 든다.”(30장)

“이긴다 하더라도 미화하지 않는다. 승리를 미화하는 사람은 살인을 즐기는 것이다. 살인을 즐기는 사람은 천하의 뜻을 얻을 수 없다.”(31장)

이기적 욕망은 다툼으로 드러나고, 그 다툼의 극대화가 바로 전란이다. 그런 까닭에 노자는 다투지 말라며 알아듣기 쉽게 타이른다. 

“얻기 어려운 재물을 귀하게 여기지 않으면 훔치는 일이 없어진다. 욕심낼 만한 것을 보이지 않으면 사람의 마음이 어지럽지 않다.”(3장)

“휘면 온전해지고, 굽으면 펴진다.”(22장)

 “그러므로 큰 나라는 작은 나라 아래로 자신을 낮춤으로써 작은 나라를 얻으며, 작은 나라는 큰 나라 아래로 낮춤으로써 큰 나라를 얻는다.”(61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