老子와 똥막대기(도덕경 해설)

도덕경 68장. 어찌 불로 하늘을 태우려 하는가

slowdream 2007. 8. 11. 01:43
 

<제 68장. 어찌 불로 하늘을 태우려 하는가>


善爲士者不武 善戰者不怒 善勝敵者不與 善用人者爲之下 是謂不爭之德 是謂用人之力 是謂配天 古之極


뛰어난 무사는 무공을 자랑하지 않고, 뛰어난 전사는 분노하지 않으며, 뛰어난 승리자는 대적하지 않으며, 뛰어나게 남을 잘 부리는 사람은 스스로를 낮춘다. 이를 다투지 않는 덕이라 하며, 사람을 쓰는 힘이라 하며, 하늘과 짝함이라 한다. 이는 예로부터의 지극함이다.



善爲士者不武 善戰者不怒 善勝敵者不與 善用人者爲之下(선위사자불무 선전자불노 선승적자불여 선용인자위지하) 

 

  자랑하지 않고, 분노하지 않고, 대적하지 않는 태도는 바로 ‘스스로를 낮추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는 곧 어떤 일에 처하든 결국 마음의 문제라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무엇이겠는가? 이런저런 일을 꼽는다 해도, 마음의 주인이 되는 것이 가장 어렵다. 장자는 어디에서나 자기 마음의 주인이 될 수 있는 도리를 지극히 간명하게 비유하고 있다.

 

  “배를 타고 강을 건널 때 사람 없는 빈 배가 내 배에 부딪히면, 성격이 불 같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화를 내지 않는다. 허나 그 배에 사람이 타고 있다면, 큰소리로 나무랄 것이다. 세 번 부를 때까지도 모른 척한다면, 욕을 해대면서 쫓아갈 것이다.”

 

  우리 같다면 세 번은커녕 대뜸 역정을 낼 것이다. 우리나라는 자동차 예절이 전멸했다고 얘기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앞차가 서투르게 운전을 하거나 옆 차선에서 자칫 끼어들기라도 하면 반사적으로 욕이 튀어나오고, 주차를 서투르게 하거나 연락처를 남기지 않으면 사람이 없는 빈 차라 하더라도 용납치 않는다. 이 모두가 마음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바깥 경계에 마음이 끌려다닌 탓이다.  


是謂不爭之德 是謂用人之力 是謂配天 古之極(시위부쟁지덕 시위용인지력 시위배천 고지극) 

 

  ‘하늘과 짝함’은 道와 하나됨을 가리킨다. 명예와 돈, 욕정 등 온갖 형태의 욕망과 짝하는 삶은 늘 초조하다. 족함을 모르고 늘 갈증에 허덕인다. 그러기에 자신의 무공을 자랑하기 바쁘고, 사소한 일에도 분노하며, 자기 앞을 가로막는 상대를 향해 죽어라 돌진하며, 높은 자리에 오르려 갖은 술수를 부린다. 그에게 삶은 곧 투쟁이다. 허나 이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요, ‘대나무 광주리에 물을 담고서 샐까 두려워 허둥지둥 뛰어감’에 다름 아니다. 잠시 숨을 돌리며 마음을 가다듬는 순간도 있겠지만, 道를 섬기는 마음이 절실하지 않으면, 이러한 욕구는 바위에 눌린 풀처럼 잠시 고개를 수그리나 이내 머리를 쳐들고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욕망에 덜미를 잡히면, 불로 하늘을 태우려 하고, 바닷속 모래알을 헤아리려 하며, 물에 비친 달을 붙잡겠다며 내내 허둥거릴 수밖에 없다.


夢幻空華   꿈속의 허깨비와 헛꽃을

何勞把捉   어찌 애써 잡으려 하는가

得失是非   얻고 잃음과 옳고 그름을

一時放却   일시에 놓아 버려라

眼若不睡   눈에 졸음이 없으면

諸夢自除   모든 꿈 절로 사라지고

心若不異   마음이 다르지 않으면

萬法一如   만법이 한결 같나니

     

  승찬 조사의 게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