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0장. 말에는 근원이 있고 일에는 주인이 있느니>
吾言甚易知 甚易行 天下莫能知 莫能行 言有宗 事有君 夫唯無知 是以不我知 知我者希 則我者貴 是以聖人被褐懷玉
나의 말은 무척 알기 쉽고 행하기도 쉽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능히 알지 못하고 행하지 못한다. 말에는 근원이 있고 일에는 주인이 있다. 무릇 이를 모르는 까닭에 나를 알지 못하고, 나를 아는 자 드문 까닭에 내가 귀한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은 굵은 거친 베옷을 걸치나 가슴에는 옥구슬을 품고 있다.
吾言甚易知 甚易行 天下莫能知 莫能行 言有宗 事有君(오언심이지 심이행 천하막능지 막능행 언유종 사유군)
道는 지극히 쉬운 것이며 道를 행하는 것 또한 어렵지 않다. 그러기에 한 선사는 ‘평삼심이 바로 도(平常心是道)’라 일갈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과연 道를 깨닫기가 쉬운 것일까? 15세기 스페인의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고 돌아오자, 그를 시기하는 사람들이 비웃음을 날렸다. “그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인가? 서쪽으로 계속 가면 누구라도 발견하기 마련 아니오?” 그러자, 콜럼버스가 탁자에 달걀을 놓고서 세워 보라고 했다. 아무도 선뜻 나서지 못하자, 콜럼버스는 달걀 밑부분을 깨뜨려서 달걀을 세웠다.
또한 앎을 실천하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그러기에 옛 현인들은 ‘지행합일(知行合一)’을 수행의 궁극적 경지로 삼기도 했던 것이다. 道를 실천하는 것은 젖혀놓고라도, 아주 사소한 버릇 하나도 우리는 쉽게 떨구지 못하고 작은 약속도 지키기 어렵다. 담배가 몸에 해롭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담배를 끊는 사람은 드물다. 아침 6시에 일어나기로 마음을 먹었다 해도, 일주일 이상 그 약속을 지키기란 그리 쉽지 않다. 불가에서는 오랜 동안 몸에 배인 습관을 습기(習氣)라 하며 매우 경계한다. 재를 불면서 티가 눈에 들어가지 않기를 바랄 수 없고 강을 건너면서 옷이 젖기를 바랄 수 없듯이, 살아가는 동안 습기가 몸에 배이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그렇다고 외면할 수는 더더욱 없는 노릇이다. 습기 또한 시비와 분별, 취사하는 마음에서 비롯한 것이니, 道를 섬기면 절로 사라지는 것이다. ‘말에는 근원이 있고, 일에는 주인이 있다’는 눈앞에 펼쳐지는 현상계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라는 다짐이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달을 직시해야 하며, 내게 닥친 불행 또는 행운이 우연이 아니라 그 까닭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是以不我知 知我者希 則我者貴 是以聖人被褐懷玉(시이불아지 지아자희 즉아자귀 시이성인피갈회옥)
모든 사람의 주머니에 보물지도가 들어 있지만, 지도를 꺼내서 길을 나서는 사람은 드물다. 오감을 자극하는 풍경이 천지에 널려 있는데, 한가롭게 주머니를 뒤질 겨를이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들 모두 분명한데 나만 홀로 완고하고 촌스럽다. 뭇사람들과 달리 나 홀로 젖 먹이는 어미를 귀하게 여긴다.”(20장), “으뜸인 사람은 道를 들으면 힘써 행하고, 중간치는 道를 들으면 있는가 없는가 의심하며, 얼치기는 道를 들으면 크게 웃는다. 크게 웃지 않으면 道라고 할 수 없다”(41장)며 노자는 탄식하는 것이다.
‘성인은 굵은 거친 베옷을 걸치나 가슴에는 옥구슬을 품고 있다’는 헛된 망상과 번뇌ㆍ욕망에 마음을 두지 않고, 참으로 값진 진리를 삶의 궁극적인 가치로 여긴다는 얘기에 다름 아니다. 이름과 명예ㆍ지위ㆍ욕정 따위는 진리로 나아가는 길목의 덫이라 여기고, 훌훌 털어버린다. 머무르지 않는 삶은 곧 무소유(無所有)의 삶이며, 존재론적인 행동양식이다. 佛家에서 출가인을 납자(衲子, 누더기를 걸친 이)라 하는데, 거친 베옷처럼 무소유를 상징한다. 머무르지 않기에 참으로 머무르며, 소유하지 않기에 참으로 소유함을 알며 행하는 자 세상에 참으로 드문 것이다.
淸江一曲抱村流 맑은 강의 한 구비 마을을 안고 흐르니
長夏江村事事幽 긴 여름 강촌의 일마다 그윽하도다
自去自來堂上燕 절로 가며 오는 것은 지붕 위의 제비요
相親相近水中鷗 서로 친하며 서로 가까운 것은 물 위의 갈매기구나
老妻畵紙爲碁局 늙은 아내는 종이로 장기판을 만들고
稚子敲針作釣鉤 어린 아들은 바늘을 두드려 낚시 바늘을 만드네
多病所須唯藥物 많은 병에 바라는 것은 오로지 약뿐이니
徵軀此外更何求 이 천한 몸이 그밖에 다시 무엇을 구하리
두보의 시 <강촌>인데, 病을 세간의 온갖 욕망에 시달린 몸과 마음, 藥을 道라 읽음은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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