老子와 똥막대기(도덕경 해설)

도덕경 65장. 지혜로써 나라를 다스리면 도적이 되고

slowdream 2007. 8. 11. 01:41
 

<제 65장. 지혜로써 나라를 다스리면 도적이 되고>


古之善爲道者 非以明民 將以愚之 民之難治 以其智多 故以智治國 國之賊 不以智治國 國之福 知此兩者 亦稽式 常知稽式 是謂玄德 玄德深矣 遠矣 與物反矣 然後乃至大順


옛날에 道를 잘 섬기던 사람은, 백성을 똑똑하게 이끌지 않고 어리석게 하였다. 백성을 다스리기 어려운 것은 그들의 지혜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혜로써 나라를 다스리면 도적이 되고, 지혜로써 다스리지 아니하면 복이 된다. 이 두 가지를 아는 것이 道에 머무르는 것이며, 이를 그윽한 德이라 한다. 그윽한 德은 깊고 멀어서, 만물과 함께 되돌아간다. 그럼으로써 道에 크게 순응하는 것이다. 



古之善爲道者 非以明民 將以愚之 民之難治 以其智多(고지선위도자 비이명민 장이우지 민지난치 이기지자) 

 

  고대 중국의 계급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人과 民이 그것으로, 人은 지배계급이며, 民은 피지배계급이다. 民의 어원은 끔찍하다. 눈이 바늘에 찔려 앞이 보이지 않는 노예 또는 포로를 형상한 것이다. 쉽게 말하면, 고대의 중국에서 民은 사람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비단 중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겠지만. <도덕경>에서 아쉬운 점은, 맥락상 그 의미가 혼용되기도 하지만 人과 民을 구분해서 사용한다는 것이다. 물론 <도덕경>이 오랜 세월 다양한 필자들이 개입하면서 엮인 집단창작적인 성격이 강한 때문이기도 하겠다. 성인은 民과 人을 초월한 위치지만, 어쨌든 <도덕경>에서 民과 人의 계급적 질서를 무너뜨리는 노골적인 발언이 약함은 내내 아쉬울 수밖에 없다. 노자가 그리 부정하고 비난하는 제자백가와 다를 바 없는 지식인으로서의 자기 한계를 노자 또한 드러낸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여기서의 지혜는 이분법적인 분별지로 번뇌와 망상이며, 어리석음은 그러한 통속적 지혜를 벗어던진 참된 지혜를 가리킨다. 백성들은 지도자를 닮기 때문에, 유위로써 다스리면 백성들이 좀더 영악해지고, 무위로써 다스려야 백성들이 道에 가까워진다는 것이다. 


故以智治國 國之賊 不以智治國 國之福 知此兩者 亦稽式 常知稽式 是謂玄德 玄德深矣 遠矣 與物反矣 然後乃至大順(고이지치국 국지적 불이지치국 국지부 지차양자 역계식 상지계식 시위현덕 현덕심의 원의 여물반의 연후내지대순) 

 

  德은 道의 현실적 구현이므로 천지만물이 그러하듯 反의 궤도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 大順은 자기 자신을 앞세우지 않고 오히려 버림으로써 다가가는 무위이므로, 佛家의 下心과 다를 바가 없겠다. 바람은 자취를 남기지 않고, 물은 자신을 고집하지 않고 그 어떤 자리도 마다하지 않으며 늘 낮은 곳으로 흐른다. 大順과 下心의 표본이다.   

 

  다음은 지혜인 유위와 지혜를 벗어던진 무위를 극명하게 대조시킨 영가 스님의 말씀이다.

 

棄有著空病亦然   있음을 버리고 공에 집착함도 병이기는 마찬가지

還如避溺而投火   물을 피하려다 도리어 불에 뛰어드는구나

捨妄心取眞理     망심을 버리고 진리를 취함이여

取捨之心成巧僞   취사하는 마음이 교묘한 거짓을 이루네

學人不了用修行   배우는 사람이 깨닫지 못하고 수행하니

眞成認賊將爲子   도적을 오히려 자식으로 착각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