老子와 똥막대기(도덕경 해설)

도덕경 63장. 한 티끌 가운데에 시방세계 담겨 있고

slowdream 2007. 8. 11. 01:40
 

<제 63장. 한 티끌 가운데에 시방세계 담겨 있고>


爲無爲 事無事 味無味 大小多少 報怨以德 圖難於其易 爲大於其細 天下難事 必作於易 天下大事 必作於細 是以聖人終不爲大 故能成其大 夫輕諾必寡信 多易必多難 是以聖人猶難之 故終無難矣


함이 없는 함을 행하고, 일 없는 일을 행하고, 맛 없는 맛을 맛본다. 큼이 작음이요, 많음은 적음이다. 원한은 도리어 덕으로 갚는다. 쉬울 때 어려움을 도모하고, 작은 일일 때 큰일을 생각한다. 천하의 어려운 일은 쉬운 일에서 시작되고, 천하의 큰일은 작은 일에서 비롯한다. 그러므로 성인은 큰일을 끝내 하지 않기에 크게 이룰 수 있다. 무릇 가벼운 허락은 신의가 부족하며, 쉬울수록 어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이 어렵게 여기는 것은 결국 어렵지 않게 끝난다.  



爲無爲 事無事 味無味 大小多少(위무위 사무사 미무미 대소다소) 

 

  앞에서 누누이 강조했듯이, “함이 없음은 못하는 함이 없음(無爲而無不爲)”이다. 또한 35장에서 “道의 드러남은 담박하여 아무런 맛이 없다”라 했는데, 이는 모두 머무름이 없을 때 가능하다. 머무름이 없을 때 참된 머무름이 주어지는 것이다.

  <금강경>에서 부처가 이르시길, “보살은 마땅히 일체의 상을 떠나 위 없는 지혜의 마음을 일으키고, 형체에 머물러 마음이 생겨서는 안 되며, 소리ㆍ향기ㆍ맛ㆍ촉감ㆍ법에 머물러 마음이 생겨서는 안 되며, 마땅히 머무름이 없는 마음이 생겨야 한다. 마음에 머무름이 있다면 그것은 머무름이 아니다.”

  여기까지가 무위의 설명이라면, 大小多少는 道의 설명이다. 反과 易, 中道의 이치에 따르면 큼은 곧 작음이고, 많음이 곧 적음이다. 신라시대 화엄종의 개조(開祖)인 의상(義湘) 대사가 화엄종의 근본 도리를 간략하게 정리한 <법성게(法性偈)>에도 이러한 이치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전문을 옮기고 싶지만 긴 편이라 관계되는 문장만 옮긴다.


一中一切多中一   하나 속에 모두 있고 여럿 속에 하나 있어

一卽一切多卽一   하나가 모두이고 모두가 하나이네

一微塵中含十方   한 티끌 가운데에 시방세계 담겨 있고

一切塵中亦如是   일체의 티끌마다 시방세계 들어 있네

無量遠劫卽一念   무량한 오랜 세월 한 생각 찰나이고

一念卽是無量劫   한 생각 찰나 속에 무량 세월 들어 있네



報怨以德 圖難於其易 爲大於其細 天下難事 必作於易 天下大事 必作於細 是以聖人終不爲大 故能成其大 夫輕諾必寡信 多易必多難 是以聖人猶難之 故終無難矣(보원이덕 도난어기이 위대어기세 천하난사 필작어이 천하대사 필작어세 시이성인종불위대 고능성기대 부경락필과신 다이필다난 시이성인유난지 고종무난의) 

 

  道를 섬기는 성인의 무위행을 구체적으로 그렸다. 원한은 德으로 돌려준다.‘눈에는 눈, 이에는 이’는 유위법의 차원이다. 쉬움 속에 어려움의 씨앗이 들어 있고, 어려움 속에 쉬움의 씨앗이 들어 있다. 그러기에 성인은 쉬움에 머무르지 않고, 또한 어려움에도 머무르지 않는다. 복잡다난한 삶을 꾸리는 작금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말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