老子와 똥막대기(도덕경 해설)

도덕경 78장. 바른 말은 뒤집혀 보인다

slowdream 2007. 8. 11. 01:48
 

<제 78장. 바른 말은 뒤집혀 보인다>


天下莫柔弱於水 而攻堅强者莫之能勝 其有無以易之 弱之勝强 柔之勝剛 天下莫不知 莫能行 是以聖人云 受國之垢 是謂社稷主 受國不祥 是爲天下王 正言若反


천하에 물보다 부드럽고 약한 것은 없으나, 굳고 강한 것을 물리치는 데 물보다 뛰어난 것은 없다. 물처럼 수월하게 해내는 것은 없다. 약함이 강함을 이기고, 부드러움이 억센 것을 이긴다. 이를 모르는 이 없지만, 실천하지는 못한다. 그런 까닭에 성인이 이르기를, 나라의 허물을 떠맡는 사람이 사직의 주인이며, 나라의 상서롭지 못한 것을 떠맡는 사람이 천하의 주인이다. 바른 말은 반어(反語)와도 같다. 


天下莫柔弱於水 而攻堅强者莫之能勝 其有無以易之 弱之勝强 柔之勝剛 天下莫不知 莫能行(천하막유약어수 이공견강자막지능승 기유무이이지 약지승강 유지승강 천하막부지 막능행) 

 

  78장의 요지는 한마디로 ‘上善若水’로 압축할 수 있겠다. 물의 특성은 道에 다름 아니다. 늘 변화하나 본성을 잃지 않으며 다시금 제자리로 돌아오고, 자리하지 않는 곳이 없으며, 늘어남도 줄어듦도 없다. 43장에서도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것이 가장 견고한 것을 다스린다”라 하였지만, 여기에서도 부드러움이 억세고 강한 것을 이긴다고 새삼 강조한 까닭은, 역설과 반어를 통해서 道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라는 의미이다. 상식과 보편적 이성, 합리성이라는 허울로 화려하게 포장된 이제까지의 믿음을 저버리고, 역설과 반어의 논리에 눈길을 던져보자는. 

 

  ‘이를 모르는 이 없지만, 실천하지는 못한다’이라는 말은 복선이 깔려 있다. 첫째로, 道는 너무도 쉽고 소박하기 때문에 누구나 다 알고 있으나, 다만 자신이 알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는 깨닫지 못하고 있을 따름이다. 자기 이마에 박힌 보석을 찾으려고 온세상을 헛되이 돌아다니는 사람과도 같다 하겠다. 둘째로는, 입만 열면 진리를 떠들어대는 지식 장사꾼들을 겨냥한 비웃음이다. 71장에서 “앎을 앎이 아니라 여기는 것이 으뜸이며, 앎이 아님을 앎이라 여기는 것은 병이다”라 하였는 바, 그들이 진리라고 외쳐대는 것이 정작 진리가 아님을 비아냥거린 것이다. 셋째로, 道는 결코 어렵지 않기 때문에 노자 자신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으나, 정작 중요한 것은 앎이 아니라 실천이라는 의미이다. 뒤집어 말하면, 실천이 아닌 깨달음은 깨달음이 아니라는 얘기이다. 道는 실천 그 자체이다. 道와 무위가 어찌 따로 놀겠는가. 道는 본체요, 무위[德]은 그 활용인 바, 道가 무위이며 무위가 道인 것이다.


是以聖人云 受國之垢 是謂社稷主 受國不祥 是爲天下王 正言若反(시이성인운 수국지구 시위사직주 수국불상 시위천하왕 정언약반) 

 

  나라를 이끌든, 가정을 이끌든 지도자는 물과도 같아야 한다. 늘 낮은 곳으로 흐르고, 가장 궂은 일을 도맡으며, 온갖 것을 섬길 뿐 다투지 않는다. 그럼으로써 나라가 부강해지고, 가정이 평안해진다. “하늘과 땅은 영원한데 그 까닭은 자신을 위해 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영원할 수 있는 것이다. 성인은 자신을 뒤로 하기에 앞서고, 그 몸을 아끼지 않기에 몸을 보존한다. 나를 비움으로써만이 나를 완성하는 것 아니겠는가.”(7장) “스스로를 드러냄이 없으니 밝고, 스스로를 옳다 함이 없으니 빛나며, 스스로 자랑함이 없기에 공이 있고, 스스로 뽐냄이 없으니 오래 간다. 무릇 다툼이 없으니 천하의 그 누구도 그와 다툴 수 없다.”(22장)

 

  正言若反은 여러모로 해석이 가능하다. 그 하나는, 세상은 전도되어 있기 때문에 진정으로 바른 말은 반어와 역설일 수밖에 없다. 다른 하나는, 바른 말은 反의 이치를 좇는다. 즉 ‘되돌아가고, 뒤집히며, 되풀이한다’는 이치를 담고 있지 않다면 바른 말이 아니다. 또 다른 하나는, 바른 말은 세상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준다. 집안 깊숙이 모셔둔 보석이 다름 아닌 돌맹이에 지나지 않다고 귀띔하면, 어찌 당혹스럽지 않겠는가. 그러기에 크게 웃지 않으면 道가 아니라 하지 않았던가.  

반어와 역설의 대가로는 가히 선종의 조사들을 따라갈 이가 없다. 이들의 가르침은 ‘가불매조(呵佛罵祖-부처를 욕하고 조사를 꾸짖음)’에서 절정에 이른다.

 

  덕산 선사가 이르길,

“부처도 조사도 없고 달마는 냄새나는 촌뜨기에 지나지 않는다. 부처는 별볼일없는 마른 똥막대기이고, 문수와 보현보살은 똥 치는 사내에 불과하다. 등각이니 묘각이니 하는 오묘한 깨달음도 족쇄를 벗어난 평범한 인간성에 지나지 않으며, 보리와 열반은 당나귀를 매놓는 말뚝에 지나지 않다. 팔만대장경은 귀신의 장부이고, 종기의 고름을 닦아내는 휴지에 불과하다.”

 

  할(喝)로 유명한 임제 선사 왈,

“세상의 속임수에 말려들지 말라. 안팎으로 만나는 것들을 모두 죽여버리라.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여라.”

 

  운문 선사도 결코 지지 않는다.

“석가모니는 태어나자마자 한 손으로 하늘을 한 손으로는 땅을 가리키며 일곱 걸음을 걷고서 사방을 두리번거리며‘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 했다. 내가 그때 보았더라면 한 방에 쳐죽여 개밥으로나 주어 천하태평을 도모하는 데 한몫을 했을 것이다.”

 

  가히 반어와 역설의 대가들이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