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言語)에 떨어지다.
問 纔向和尙處發言 爲甚麽便言話墮
師云 汝自是不解語 人有甚麽墮負
問 向來如許多言說 皆是抵敵語 都未曾有實法指示於人
師云 實法無顚倒 汝今問處自生顚倒 覓甚麽實法
배휴 : 스님께 말씀을 드리기만 하면 어째서 말에 떨어진다고 하십니까?
대사 : 네가 스스로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지 사람이 어찌 떨어지겠느냐?
배휴 : 앞으로 많은 말을 하더라도 모두 그때그때의 방편일 뿐
일찍이 사람에게 보여줄 진실한 법은 없는 것입니까?
대사 : 진실한 법은 전도(顚倒 : 뒤집힘, 잘못 됨)됨이 없다
제가 지금 묻는 것이 스스로 전도됨을 일으키니 어찌 진실한 법을 보겠느냐?
(진실한 법이니 아니니, 진실한 법이 있느니 없느니, 옳으니 그르니, 말에 떨어지느니 아니니 하며 묻고 있는 그 자체가 바로 전도됨이라는 말이다.
선사들이 왜 배고플 때 밥 먹고 잠 올 때 자는 것이라고 하는가?
배고플 때 밥을 먹으면서 진실하게 먹느니 아니니, 이런 방법으로 먹는 것이 옳으니 아니니 하고 먹지 않는다.
아니 그러한 물음이나 의문 자체가 필요가 없이 너무나 당연하게 한다.
묻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지 않는가?
왜 그럴까? 사람들은 밥 먹고 잠자는 것을 더 멋있게 하려고
지금의 자신의 모습과 비교해서 번뇌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묻는다면 오히려 잘 먹고 있던 밥숟가락을 제대로 잡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전도됨이다.
그냥 먹으면 된다. 단박에 무심하다는 말이 바로 그런 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먹고 자는 것은 그렇게 하면서고 다른 삶은 그냥 살지 못한다.
항상 남을 의식하고 남과 비교하고 자신의 잣대와 비교해서
더 멋지고 괜찮은 더 나은 자신이 되려고 한다.
그러니, 진실하니 아니니 옳으니 그르니 하는 것이 생겨난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그러한 것을 묻게 되고
그 물음이 진짜처럼 힘을 갖게 되면서 스스로 전도된 것이다.
그러면서 마치 진실한 법이 전도 되어서 어디에 숨어서 존재하는 줄 안다.
그래서 그냥 살려고 하지 않고 자꾸 구하고 묻는다.
그러나 물으면 물을수록 묻는 그 자체가 바로 전도된 것일 뿐이다.
그래서 앞선 자들은 밥 먹고 잠자는 것이 도라고 했다.
밥 먹고 잠자는 것과 도를 이루는 것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
云 旣是問處自生顚倒 和尙答處如何
師云 爾且將物照面看 莫管他人 又云 秖如箇癡狗相似 見物動處便吠 風吹草木也不別
배휴 : 이미 묻는 자리에서 스스로 전도가 된다면 스님의 대답하는 곳은 어떻습니까?
대사 : 너는 사물로 비추어 자신을 보면 되지 남의 것에 관여하지 말라.
또 말씀하시기를
“마치 어리석은 개가 움직이는 물건만 보면 곧 짖어 대는 것과 같으니 바람에 흔들리는 풀과 나무와 다를 게 없다.”
(사람들이 어떤 법을 이야기하면 꼭 남의 경우를 살피고 예를 드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옳으면 그만이지 남의 것을 들먹여서 그 사람이 옳으니 그르니 하고 따져 봐야
그것이 어찌 자신의 것이 되랴?
이는 자신의 것과 남의 것을 견주는 분별의 마음이니
그럴수록 바깥으로 달려가는 자신의 마음만 더 시끄러울 것이요.
스스로의 분별과 허물만 늘 것이다.
세간사에서도 싸울 때에 꼭 이런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허물만 보려고 하지 않고
‘그럼 넌 잘했냐?’
특히 부부싸움에 많이들 그런다.^^
그럴수록 어떤가? 더욱 시끄러워지고 해결은 점점 더 요원해질 뿐이다.
부처님께서 나찰에게 몸을 던지며 도를 구할 때에
스스로의 마음을 밝히는 것에 관심이 있었지
나찰의 모양과 의미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
무릇 도를 구하는 자는 자신의 앎으로 남의 것을 견주려 하지 마라.
묵묵히 계합할 뿐이다.)
又云 我此禪宗 從上相承已來 不曾敎人求知求解 只云學道 是接引之詞 然道亦不可學 情存學解 卻成迷道∘道無方所 名大乘心 此心不在內外中間 實無方所 第一不得作知解 只是說汝 如今情量處 情量若盡 心無方所
또 말씀하시기를,
“우리의 선종은 위로부터 전해져 오면서 사람을 가르치면서
지견과 알음알이를 구함을 가르치지 않았고
다만 도만 배우라 하였는데 이것도 인도하는 방편일 뿐이다.
도는 배우는 것이 아니다.
배우고 아는 것에 뜻을 둔다면 도리어 미혹한 도만 이룰 뿐이다.
도는 방향도 장소도 없다. 그래서 대승심이라 이름 한다.
이 마음은 안도 밖도 중간도 없어서 실로 방향과 장소가 없으니
첫째로 알음알이를 짓지 말아야 한다.
다만 지금 너에게 말하는 것은 뜻으로 헤아린 곳을 말한 것이니
뜻으로 헤아리는 것을 끝낸다면 마음은 방향과 장소가 없다.
(의미를 두고 옳고 그름을 두고 헤아리지만 않으면 마음은 갈 곳도 올 곳도 어디로 향할 곳도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대승심이라고 이름을 붙인다.)
此道天眞 本無名字 只爲世人不識 迷在情中 所以諸佛出來 說破此事 恐汝諸人不了 權立道名 不可守名而生解 故云 得魚忘筌
이 도는 천진한 것으로 본래 이름이 없다.
다만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여 뜻 가운데 앉아 미혹한 고로
여러 부처님들께서 세상에 오시어 이 미혹함을 깨뜨리기 위한 설법을 하시면서
사람들이 알지 못할까 저어하여 억지로 ‘도’라는 이름을 세운 것이니
이름에 얽매여 알음알이를 내어서는 아니 된다.
그래서 ‘고기를 잡으면 통발을 버린다.’고 하는 것이다.
身心自然 達道識心 達本源故 號爲沙門 沙門果者 息慮而成 不從學得 汝如今將心求心 傍他家舍 秖擬學取 有甚麽得時
몸과 마음이 자연스러워 마음을 아는 것에 도달한 자로,
본원에 도달하는 까닭에 사문이라고 한다.
사문이 된 것은 생각을 쉬어서 이룬 것이지 배워서 얻음을 따른 것이 아니다.
네가 지금 마음으로 마음을 구하려 한다면 남의 집에 곁방살이 하는 것과 같으니
겨우 헤아리고 배워서 얻으려 한다면 어느 때에 얻겠는가?
古人心利 纔聞一言 便乃絶學 所以喚作絶學無爲閒道人 今時人只欲得多知多解 廣求文義 喚作修行 不知多知多解 翻成壅塞 唯知多與兒酥乳喫 消與不消 都總不知
옛 사람은 마음이 영리하여 겨우 한마디만 들어도 곧 배움을 끊어 버린다.
그러므로 배움을 끊어 버린 무위의 한가한 도인이라고 부른다.
지금의 사람들은 다만 많이 알고 이해함만 얻고자 하여
널리 글과 뜻을 구하여 수행법을 만드나,
많이 알고 많이 이해함이 도리어 옹색함을 이룬다는 것을 모른다.
오직 많이 알기만 하는 것은 아이가 우유를 마심에 소화가 되는지 아니 되는지 도통 모르는 것과 같다.
三乘學道人 皆是此樣 盡名食不消者 所謂知解不消 皆爲毒藥 盡向生滅中取 眞如之中都無此事 故云 我王庫內無如是刀
삼승의 도를 배우는 사람은 모두 이 모양이어서
모두 먹기만 하고 소화를 못시키는 자를 이르는 것이요,
이른 바 아는 것과 알음알이가 소화되지 못하면 모두 독약이 된다고 하니
모두 생하고 멸함 가운데에서 취하는 것이다.
진여에는 이런 일이 없다.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우리의 왕의 창고에는 이러한 칼이 없다.”
라고 하신 것이다.
從前所有一切解處 盡須倂卻令空 更無分別 卽是空如來藏 如來藏者 更無纖塵可有 卽是破有法王出現世 亦云 我於然燈佛所 無少法可得 此語只爲空爾情量知解 但銷鎔表裡 情盡都無依執 是無事人
종전까지 갖고 있던 일체의 알음알이 자리를
모두 아울러서 공으로 돌려 버리고 다시 분별하지 않는다면
이것이 곧 허공의 여래장이다.
여래장은 한 오라기의 티끌만한 것도 없어
즉시에 유를 깨뜨리는 법왕이 세상에 출현한 것이다.
그래서 또 말씀하시기를
“내가 연등불 처소에서 조그만 법도 얻은 것이 없었다.”
고 하셨다.
이 말은 너의 뜻과 헤아림과 앎과 알음알이를 비우려고 하는 말이다.
다만 안팎이 녹아 버리면 뜻도 다하여 의탁하고 집착할 곳도 없으니
이것이 일없는 사람이다.
三乘敎網 秖是應機之藥 隨宜所說 臨時施設 各各不同 但能了知 卽不被惑 第一不得於一機一敎邊守文作解 何以如此 實無有定法如來可說 我此宗門 不論此事 但知息心卽休 更不用思前慮後
삼승의 가르침과 그물(사람들을 건지기 위한 그물)은 근기에 응한 약을 그에 맞게 설한 것으로,
임시방편으로 설한 것이니 각각 같지 아니하니.
능히 이것을 알면 미혹함을 당하지 않을 것이나,
무엇보다도 한 가지 근기나 한 가지 가르침과 글을 고집하고 알음알이를 짓는다면 얻지 못한다.
어째서 이와 같은가?
진실로 여래께서 설하실 만한 정해진 법이 없기 때문이다.
나의 이 종문(禪宗)에는 이러한 것들을 논하지 않는다.
오직 마음을 그칠 줄 알면 곧 쉬는 것이니
다시 앞과 뒤를 생각할 필요가 없다
출처 http://beinno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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