㊁ 疑同因緣
㈎ 疑
阿難言必此妙見이 性非自然인댄 我今發明是因緣生이나 心猶未明하야 諮詢如來하노니 是義云何이며 合因緣性이닛고
아난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반드시 이 묘하게 밝은 보는 성품이 자연이 아니라면 저는 다시 이것이 ‘인연으로 해서 생긴 것이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아직 분명하지 못하여 부처님께 묻습니다. 이 이치가 어떻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설하신 인연의 뜻에 맞겠습니까?”
㈏ 釋
佛言汝言因緣이라하나 吾復問汝호리라 汝今因見으로 見性現前하리니 此見爲復因明有見가 因暗有見가 因空有見가 因塞有見가 阿難若因明有인댄 應不見暗이며 如因暗有인댄 應不見明이라 如是乃至因空因塞도 同於明暗하니 復次阿難아 此見又復緣明有見가 緣暗有見가 緣空有見가 緣塞有見가 阿難若緣空有인댄 應不見塞이며 若緣塞有인댄 應不見空이라 如是乃至緣明緣暗도 同於空塞하니라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네가 인연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내가 다시 너에게 묻는다. 네가 지금 보기 때문에 보는 성품[見性]이 앞에 있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보는 성품이 밝음으로 인하여 있다고 생각하느냐, 어두움으로 인하여 있다고 생각하느냐, 허공으로 인하여 있다고 생각하느냐, 막힘으로 인하여 있다고 생각하느냐?
아난아! 만약 밝음으로 인하여 보게 된다면 응당 어두운 것을 보지 못할 것이고, 어두움으로 인하여 보는 것이라면 밝은 것을 보지 못할 것이다. 이와 같이 더 나아가 허공으로 인하여 보게 되거나 막힘으로 인하여 보게 되는 것도 앞의 명암(明暗)과 같을 것이다.
다시 아난아! 이 보는 성품이 밝은 것을 연(緣)하여 보게 되느냐, 어두운 것을 연하여 보게 되느냐, 허공을 연하여 보게 되느냐, 막힘을 연하여 보게 되느냐? 아난아! 만약 허공을 연하여 보게 된다면 막힌 것을 보지 못할 것이요, 만약 막힘을 연하여 보게 된다면 하공을 보지 못할 것이다. 이와 같이 더 나아가 밝음과 어두움도 트이고 막힘[空塞]의 비유와 같을 것이다.
㊂ 疊拂直示
當知如是精覺妙明은 非因非緣이며 亦比自然이며 非不自然이니 無非不非하며 無是非是하야 離一切相하고 卽一切法이어늘
그러므로 응당 이와 같은 깨달음의 묘명[精覺妙明]은 인(因)도 아니고 연(緣)도 아니며 또한 자연(自然)도 아니고 자연 아님도 아니며 비(非)와 불비(不非)도 없고 시(是)와 비시(非是)도 없어서 일체의 형상[一切相]을 여의고 일체의 존재[一切法]에 들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汝今云何於中措心하야 以諸世間戱論名相으로 而得分別가 如以手掌으로 撮摩虛空인달하야 祗益自勞언정 虛空云何隨汝執捉이리요
너는 지금 어찌하여 그 가운데 마음을 두어 속세의 부질없는 이름과 모양으로 분별을 일삼고 있느냐? 이는 마치 손바닥으로 허공을 잡으려는 것과 같아서 스스로 수고로움만 더할 뿐 허공이 어떻게 너의 손에 잡히겠느냐?”
㊃ 引經再辯 ㈎ 引經問難
阿難白佛言호대 世尊必妙覺性이 非因非緣인댄 世尊云何常與比丘로 宣說見性具四種緣하니 所謂因空因明 因心因眼하시니 是義云何닛고 佛言 阿難아 我說世間의 諸因緣相이언정 非第一義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어! 반드시 이 묘한 깨달음의 성품[覺性]이 인(因)도 아니고 연(緣)도 아니라면 세존께서는 어찌하여 항상 비구들에게 ‘보는 성품이 작용을 하려면 네 가지 인연을 갖추어야 한다. 말하자면 허공을 인으로 삼고, 밝음을 인으로 삼으며, 마음을 인으로 삼고, 눈을 인으로 삼는다’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아난아! 그것은 내가 세간의 가지가지 인연의 모습[相]을 말한 것이지, 제일의제(第一義諦)를 말한 것은 아니다.
㈏ 委曲辯覈
阿難吾復問汝하노라 諸世間人說我能見하니 云何名見이며 云何不見고 阿難言世人因於日月燈光하야 見種種相名之爲見이오 若復無此三種光明하면 則不能見이니라
아난아! 내가 다시 너에게 묻는다. 모든 세상 사람들은 ‘내가 본다’고 말하는데 어떤 것을 ‘본다’고 하고. 어떤 것을 ‘보지 못한다’ 하느냐?”
아난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상 사람들은 해나 달이나 등불의 빛으로 인하여 갖가지 모양을 보게 되면 이를 ‘본다’하고, 만약 이 세 가지 빛이 없으면 곧 ‘보지 못한다’고 합니다.”
阿難若無明時에 名不見者인댄 應不見暗하리라 若必見暗인댄 此但無明이리요
“아난아! 만약 빛이 없을 때에 ‘보지 못한다’고 하면 응당 어둠도 보지 못해야 할 것이다. 만약 어두움을 본다면 이는 다만 밝음[明]이 없을 뿐이거늘, 이를 어찌 보는 성품[見]이 없다고 할 수 있겠느냐?
阿難若在暗時에 不見明故로 今在明時不見暗相도 還名不見이니 如是二相俱名不見이로다
아난아! 만약 어두울 때에 ‘밝은 것을 보지 못한다’하여 이것을 보지 못한다고 하면 지금 밝을 때에 ‘어두움을 보지 못하는 것’도 보지 못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밝고 어두움의 두 가지 모양을 다 보지 못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若復二相自相凌奪이언정 非汝見性於中暫無이니 如是則知二俱名見이언정 云何不見이리요
이와 같이 두 가지 현상[二相]이 서로 빼앗음이 있을지언정 너의 보는 성품[見性]은 그 가운데에서 잠시도 없어지지 않았다. 이와 같은 점에서 두 가지 현상을 모두 본다고 해야지, 어찌 보지 못한다고 할 수 있겠느냐?
㈐ 正明見體 ㉮ 明離緣
是故阿難汝今當知하라 見明之時에 見非是明이며 見暗之時에 見非是暗이며 見空之時에도 見非是塞이며
그러므로 아난아! 네가 지금 밝은 것을 볼 때에도 보는 성품[見]은 밝음에서 온 것이 아니고, 어두운 것을 볼 때에도 보는 성품은 어두움에서 온 것이 아니며, 또한 허공을 볼 때에도 보는 성품은 허공에서 온 것이 아니고, 막힌 것을 볼 때에도 보는 성품은 막힌 것에서 온 것이 아니다.
㉯ 明離相
四義成就로 汝復應知하라 見見之時에 見非是見이니라
또한 명암공색(明暗空塞)의 이 네 가지 이치를 통해서 너는 응당 보는 것을 볼 때에 그 보는 성품은 시견(是見)도 비견(非見)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 結責勉進
見猶離離見하야 見不能及커니 云何復說因緣自然及和合相이리요 汝等聲聞狹劣無識하야 不能通達淸淨實相이기에 吾今誨汝하노니 當善思惟하야 無得疲怠菩提路하라
보는 성품은 이와 같이 능견(能見)과 소견(所見)을 여의어서 망견(妄見)으로는 능히 미칠 수 없는데, 어떻게 다시 이 보는 성품을 ‘인연이다 자연이다 화합의 현상이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
너희들 성문(聲聞)들이 용렬하고 무식하여 아직 청정한 실상을 통달하지 못하였기에 내가 지금 너희들에게 가르쳐 주려고 한다. 응당 잘 듣고 사유하여 미묘한 깨달음의 길에서 물러나지 말라.”
'***대승경전 > 수능엄경(首楞嚴經)' 카테고리의 다른 글
譯註 首楞嚴經 제 42 회(제2권<正宗分>見道分:2 發明覺性 直使造悟) (0) | 2008.03.15 |
---|---|
譯註 首楞嚴經 제 41 회(제2권<正宗分>見道分:2 發明覺性 直使造悟) (0) | 2008.03.15 |
譯註 首楞嚴經 제 39 회(제2권<正宗分>見道分:2 發明覺性 直使造悟) (0) | 2008.03.15 |
譯註 首楞嚴經 제 38 회(제2권<正宗分>見道分:2 發明覺性 直使造悟) (0) | 2008.03.15 |
譯註 首楞嚴經 제 37 회(제2권<正宗分>見道分:2 發明覺性 直使造悟) (0) | 2008.03.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