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무술뿐 아니라 모든 수행에 있어서 호흡조절은 매우 중요하게 취급되어진다. 불가의 경전 중에서 특히 호흡을 중점적으로 다룬 경전은 『안반수의경(安般守意經)』이다. 더불어 남방 상좌부 계열의 위빠사나 수행에서도 호흡관찰은 매우 중요한 기법중의 하나이다. 이러한 호흡에 대한 중시는 비단 불교뿐이 아니라 도가(道家)와 선가(仙家)계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호흡(呼吸)이란 단어는 물론 한자이고, 이는 내쉬고 들이쉰다는 우리말의 날숨과 들숨에 해당된다. 우리말에서는 생명이 다하는 것을 목숨이 다했다고 한다. 즉 숨이라 표현되는 생명력이 팽창하고 수축하는 활동을 숨 쉰다고 한다. 그래서 숨을 쉬면 살아 있는 것이고, 숨이 멎으면 이승을 하직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각자가 사는 동안 숨 쉬는 모습이 천태만별로 모두 다르다. 어떤 이는 가슴으로 가쁘게 숨을 쉬고, 성악가의 경우나 민속의 창을 전문으로 하는 예술인을 보면 한 호흡이 매우 긴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병이 들었을 때에는 호흡에 변화가 오게 된다. 이를 보면 호흡이란 것도 배우고 익히면, 얼마든지 깊고 길고 고요한 호흡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즉 호흡이란 단지 과학적 사고방식의 산소를 흡입하고 노폐물인 이산화탄소를 내뱉는 과정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동양과학의 한부분인 한의학의 입장에서 본 인체의 구조는 이를 설명해주고 있다. 우리 몸에는 눈에 보이지 않고 계측기기로 검출이 안 되지만, 경험론적으로 온몸을 주유하고 5장6부를 유기적으로 상호연계 시켜주는 기(氣)의 통로, 즉 기의 체계가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불교무술 호흡수련이라 함은 런닝머신 위에서 폐활량을 키우는 방식으로 개발이 되는 것이 아니다. 제일 먼저 이러한 눈에 보이지 않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기의 체계를 이해하고 소통시켜나가는 습득의 과정이 필요하다.
물론 『안반수의경』에서 가리키고 있는 바는 포괄적이지만, 몸을 움직이는 기의 체계를 이해하는 것을 특히 ‘관신법(觀身法)’이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신(身)이라 함은 피와 살로 된 육신을 말함이 아니라, 육신을 유지하고 움직여가는 상위의 조절개념을 말하고 있다. 즉 『안반수의경』이란 단지 추상적인 설명위주의 경전이 아니라, 바로 인체를 탐색하고 실천에 옮길 수 있도록 마련된 단계적 수행지침서인 것이다.
옛말에 ‘신행즉기행(神行卽氣行) 신주즉기주(神住卽氣住)’라는 말이 있다. 기(氣)라는 생명에너지는 사람의 의식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이다. 또한 현대 의학적 연구결과에서 밝혀졌듯이 우리의 의식은 표면의식과 잠재의식 그리고 무의식의 3단계의 중층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각 의식은 주파수의 진동이 다르게 나타난다.
우리의 하루 일상생활에서 보면, 낮의 활동은 표면의식이 주를 이루고, 밤중에 꿈을 꿀 때는 잠재의식이 발현하고, 한밤중에 잠깐 꿈 없는 시간을 거치게 되는데 이때 인간은 무의식상태에 있다고 한다. 한마디로 하루 중에 인간은 3가지 의식차원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의식의 단계에 따라 상이한 차원의 생명에너지(氣)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불교무술수련에서는 역(逆)으로 기를 수련함으로서 해당 의식차원을 경험하게 된다. 즉 수련의 도가 깊어지면 깨어 있는 동안에도 무의식의 차원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호흡이라는 말을 쓸 때는 여러 차원의 측면에서 사용한다. 개인의 생명활동만을 호흡이라 하지 않고, 사람 간의 유대관계 및 자연과의 공감도 또한 호흡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호흡수련이란 불가의 연기(緣起)사상을 체득하기 위한 수행의 기본단계가 된다. 그래서 혹자는 불가의 연기사상과 수행의 호흡수련을 동일시하는 경우도 있다.
이제 우리는 불가무술에서 호흡수련이 단지 기를 강화하고자 하는 것만이 아님을 이해할 수 있다. 근본적인 불가무술의 호흡수련이란 기(생명에너지)의 조화를 통하여, 여러 차원의 의식을 경험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불가무술상의 호흡수련은 연기법(緣起法)의 체득을 위한 것이다.
연제홍 영국 뉴캐슬대학 화공학박사
출처 법보신문 961호 [2008-0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