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는 과학과 충돌을 일으키지 않는 유일한 종교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말을 들을 정도로 불교 교리는 합리적이지만 불교에서 말하는 무아론(無我論)은 깊은 깨침이 없는 사람에게는 무척 곤혹스럽게 들리는 말이다.
불교가 업(業, Karma)과 윤회(輪廻)를 말하고 인과응보와 사람의 도덕적 책임을 말하면서 영원한 자아(自我)를 부정하기 때문이다.
보통사람에게는 이러한 주장이 이율배반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금생에 선행을 하여 내생에 천상에 태어나는 것이 불교의 목표는 아니지만 육도 윤회(六道 輪廻)는 불교적 윤리의 핵심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세상을 존재론적으로 보는 한 무아론은 이해하기 어려운 교리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존재론적 사고(思考)가 세상을 보는 유일한 방식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먼저 다음 글을 살펴보기로 하자.
“세계에는 두 가지 종류의 사물이 있는 것 같다. 돌멩이나 깡통처럼 그 성질만 나열해도 완전히 설명할 수 있는 것들이다. 다른 하나는 과정으로서만 이해할 수 것들이다. 사람이나 문화 같은 존재는 단순한 사물이 아니라 시간에 따라 전개되는 과정들이다. (돌멩이 같은 것들은 사람이 ‘어떤 것’이라고 부르는 것들이다.) … 그러나 이렇게 사물을 ‘어떤 것’들과 과정으로 나누어 보는 것은 착각이다. ‘어떤 것’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서서히 변하는 것과 빨리 변하는 것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 우주에는 사물과 과정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빠른 과정과 느린 과정이 있을 뿐이다. … 우주가 사물로 구성되어 있다는 환상은 고전역학을 구성하는 바탕이 되었다. (사람이 사물을 기술할 때는 보통 그 사물의 상태에 관해서 말한다.) … 각각의 실험은 어떤 순간에 고정된 그 입자의 상태를 보여주는 것으로 여긴다. 일련의 측정은 각각의 정지된 순간을 촬영한 영화의 정지된 영상과 흡사하다. … 상대론과 양자론은 우리 우주가 과정들의 역사라고 말하고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무엇인가가 어떤 상태에 있다면 이것은 환상이다. … 우주는 많은 사건들로 구성되어 있다. 한 사건은 과정의 가장 작은 부분 또는 변화의 가장 작은 단위로 구성될 수 있다. … 사건들의 우주는 관계론적인 우주다. 모든 성질들은 사건들 사이의 관련성을 통해서 기술된다. 두 사건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관계는 인과관계다. … 우주의 인과적 구조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인과적 구조가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가를 결정하는 법칙을 아인슈타인의 장 방정식이라고 한다.”
위의 글에서 물리학적 용어만 아니라면 이 글의 출처가 불교경전이나 논서라고 해도 이상한 데가 없을 것이다.
이 글의 출처는 스몰린(Lee Smolin)이라는 물리학자가 쓴『양자중력(量子重力, Quantum Gravity)의 세 가지 길』이라는 책이다.
이 책에 있는 글 가운데 몇 군데 따서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 위의 인용문이다.
다만 이 인용문에서 ( )속에 든 부분은 필자가 이해를 돕기 위해 덧붙인 것이다. 현대물리학의 입장에서 보면 세상을 사건 중심으로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사건 중심으로 인간을 기술하면 무아론이 된다. 상주불멸의 ‘아(我)’란 없고 오취온(五取蘊)이 인과관계를 맺고 인과관계를 갖는 사건이 부단히 계속되는 것이 불교의 윤회인 것이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행위자는 없고 행위만 있다고 하는 것이다.
김성구 이화여대 명예교수
출처 법보신문 984호 [2009년 01월 29일 1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