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如如한 날들의 閑談

처음....

slowdream 2008. 10. 5. 13:52

처음...

 

                                                                                                             

그대여,

국밥 한 그릇과 소주 한 병으로

한겨울 추위를 녹이며

삶과 예술, 철학을 논하던

벗들이 없음을 슬퍼하지 말게.

 

그대여,

가진 것 하나 없이

가난한 노래만을 부르는 그대를

세상에서 가장 따스한 손길로 위로하던

어여쁜 여인이 등을 돌렸다고

서러워하지 말게.

 

벗들이 떠나고

어여쁜 여인이 쭈뼛거리며

그대를 멀리한 것은 아니다.

다만, 그대가 떠난 것이다.

 

모퉁이를 꺾어 돌면

여전히 다정한 벗들과

여전히 어여쁜 여인이

함박웃음을 떠올리며 그대를 맞이하리.

 

그대는 모를 뿐,

‘처음처럼’을 갈망하는 그대에게

밤의 빗장을 닫고 다가오는 새벽이 늘 ‘처음’인 것을

그대는 단지 모를 뿐이네.

 

그대의 눈에 내려앉는 고운 햇살은

어제의 햇살이 아니며

그 햇살이 내려앉는

오늘의 눈, 얼굴, 가슴과 팔다리, 발등 또한

어제의 눈, 얼굴, 가슴과 팔다리, 발등이 아님을.

그리하여 늘 시작인 것을,

 

아득한 눈길로

무너진 몸으로

지나온 길을 돌아보며

나, 너무 멀리 온 까닭에 돌아가지 못하네...

탄식하며 안타까워하지 않아도 되니.

 

그대여,

어제의 길은 말끔히 지워졌고

그대의 몸과 마음이

바로 새로운 길임을 깨달아야 하리.

 

소실점이 없는

그대의 눈길에 내내 사로잡힌 풍경은

간지러운 봄날 아지랑이와 같은 것

손에 닿으면 톡 터져버리는 비눗방울 같은 것

좇을래야 좇을 수 없는

허공을 가르는 새의 흔적과 같은 것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모퉁이를 돌고

낯선 풍경이 그대를 맞이한다.

 

낯선 만큼

꼬옥 그만한 크기와 무게로

낯익은 위안이 그대의 지친 걸음을 감싸주리니,

 

그리하여

오늘의 길과

어제의 길이 서로 이어지나니

그리하여 또 시작인 것을

 

우리는 다만 모를 뿐이네

우리는 다만 모를 뿐이네.

 

 

蕭湛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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