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如如한 날들의 閑談

止와 觀

slowdream 2008. 10. 12. 01:42

 

 

                                                                                                        

止와 觀

 

 

마음이란 알듯 모를 듯,

보일 듯 말듯하여 마음이다.

안다, 보인다 하면 무명(無明)이요,

모른다, 보이지 않는다 하면 무기(無記)이다.

 

간다 할 때, 몸도 마음도 옷도 함께 가듯

비추는 작용(用)도 마음이요,

비추이는 상(相)도 마음이요,

비추는 바탕(體) 또한 마음이다.

 

2500여 년 전,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사바세계에 오셔서

‘위 없는 올바르고 평등한 진리’를 깨닫고,

중생들을 위해 열반을 미루며 온갖 정성을 기울인 것은,

오로지 이 마음법을 전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하여 삼학(三學)인 계, 정, 혜를 일러주셨으니

그 가운데 정과 혜가 곧 지관(止觀, 止)과 관관(觀觀, 觀)이다.

 

지란 관에 머무는 것으로 선정이라 하며,

관이란 관을 관하는 것으로 지혜라 한다.

관은 곧 마음을 가리킨다.

 

지와 관은 마음에 머무르고, 마음을 밝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불법을 마음법이라 하는 것이다.

지와 관이 둘이 아니며(不二),

둘이 아님을 또한 마음이라 한다.

 

지혜는 구한다 해서 구해지는 것이 아니다.

이는 두 개의 몸을 하나로 합할 수 없는 이치와 같다.

어리석음은 버린다 해서 버려지는 것이 아니다.

이는 하나의 몸을 두 개로 쪼갤 수 없는 이치와 같다.

있는 머리에 무슨 머리를 또 얹을 것이며,

없는 혹에서 무슨 혹을 떼어내겠다는 말인가.

 

옛어른들과 선지식들이 입을 모아 간절히 이르되,

‘부처를 구하면 부처를 죽이고, 열반을 구하면 열반을 죽인다.’ 하지 않았는가.

본디 있는 것이며, 본디 없는 것이다.

다만 지혜라, 어리석음이라 이름할 따름이다.

그런 까닭에 지혜와 어리석음이 둘이 아니니,

지혜와 어리석음 모두 마음에 다름 아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지혜를 건네준 것도 아니며,

그들의 어리석음을 덜어준 것도 아니다.

마음이야 간절하셨겠지만,

건넬 수도 덜어줄 수도 없는 것이,

지혜요 어리석음인 까닭이다.

다만, 진리에 다가갈 수 있는 길을 보여주셨을 따름이다.

이를 가리켜 ‘전등(傳燈)’이라 한다.

 

등불은 진리 자체가 아니며,

다만 길을 밝혀주는 길라잡이에 지나지 않다.

그 등불로써,

자신의 살림살이를 환히 비추어 마음을 깨닫는 것은

전적으로 자신에게 달려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제행무상, 제법무아, 열반적정’의

세 가지 진리(三法印)를 말씀하셨지만,

그 말씀을 들었다 해서

깨닫는 것은 결코 아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열반에 이르러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씀이,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임을 우리 모두 모르지 않는다.

이는, 스스로 밝히고, 마음에게 의지하여 밝히라는 간곡한 타이름이다.

 

나 아닌 밖에서 구하지 말고,

마음 아닌 그 무엇에 의지하여 길을 떠나지 말라는 말씀이다.

결국, 나라는 몸은 마음의 그림자이므로,

곧, 진리는 오로지 마음에 의지하여 밝힐 수 있을 따름이라는 것이다.

 

마음에 머물고, 마음을 밝히는 길이

지와 관임에,

지와 관으로써만이

스스로 빙글빙글 돌면서

어지러움을 호소하는 병을 고칠 수 있으니.

 

 

蕭湛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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