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체의 종자로 말미암아서 이런 저런 변화가 일어나고
상호 전변하는 힘에 의해서 여러 가지 분별이 생겨난다.
(由一切種識 如是如是變 以展轉力故 彼彼分別生)
이것은 제18송이다. 이것은 마음작동의 심층과 표층의 두 측면을 설명한다. 심층적 마음작동은 종자로 말미암아서 비롯되고 표층적 수준은 심층의 종자의 전변에 의해서 표층수준에서 분별이 일어남을 말한다.
심층의 종자는 과거의 경험내용으로서 잠재적인 힘을 말하는데, 구체적으로는 현재에서 어떤 효력과 차별의 결과를 발생시킨다. 과거 행위의 결과인 종자가 원인이 되어서 현재에 새로운 결과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종자, 씨앗에 비유한 것이다. 이것은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의 특징을 가진다.
첫째는 사용(士用)이다. 불교에서 자주 사용하는 업(業, karma)을 현대어로는 행위라고 한다. 까르마란 ‘행위하다’는 의미를 가진 ‘k ’에서 온 말이다. 행위는 반드시 사회적인 어떤 위치와 기능을 포함한다. 행위는 이런 구조 속에서 반복적으로 이루어지고, 이것의 결과가 종자이다. 종자는 다시 새로운 닮은 행위를 발생시키는 힘을 가진다.
둘째는 이숙(異熟)이다. 이숙이란 시간을 달리하여 익어간다는 의미이다. 종자가 곧바로 싹이 돋아나 밖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적당한 원인과 조건에 따라서 시간을 달리하여 그 결과로서 열매가 맺어진다는 말이다. 이 말은 어떤 행위가 곧장 잠재적인 세력을 얻는 것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오랜 세월을 흘러서 마침내 힘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특정한 문화나 가족관계에서 계속적으로 반복하여 함께 생활하면서, 그 가족 간의 관계 속에서 반복적으로 동일한 경험을 하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물들고, 성격이 형성된다는 말이다.
셋째는 등류(等流)이다. 원인과 그 결과가 같은 유형의 형태를 가지고 변화된다는 말이다. 현재에 악한 행위를 짓는 일은 미래에 악한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고, 현재의 착한 마음의 행위는 과거의 착한 행위로부터 비롯된 측면이 있다는 말이다. 행위란 반복성으로서 관성의 법칙처럼, 동일한 행위는 그대로 상속되어서 같은 행위를 계속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면, 엄마가 강박이라면 딸의 경우도 강박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넷째는 증상(增上)이다. 어떤 원인에 더욱 힘을 보태는 조건으로 인하여, 종자는 더욱 강력한 힘을 얻는다. 씨앗이 적절한 조건 아래에서 싹을 트고 나오듯이, 우리의 행위도 어떤 원인이 잠재되어 있었지만, 그런 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만나서 더욱 강력해진 경우를 말한다. 이를테면 우울의 기질을 가진 사람이 실직하는 아픈 경험을 하게 되면 더욱 심각한 우울증상을 경험하는 경우가 바로 그렇다. 건강한 사람들은 금방 그것을 떨고 일어나지만, 이런 경우는 깊은 감정의 늪에 갇혀서 빠져나오지 못한 경우가 많다.
다섯째는 이상의 4가지 종자발생과 질적으로 다른 경우로서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는 해탈을 가능하게 하는 불성(佛性)의 종자가 존재한다고 가정한다. 인간은 절대로 번뇌에 갇혀 지내지 않고 끝내는 착한 거룩한 길을 간다는 믿음이다. 이것은 인간의 가장 깊은 내면에 깨달음의 힘으로서 불성의 존재가 있다고 믿는다.
이런 심층의 종자들은 다양한 형태로 표층적 수준에 영향을 준다. 그래서 현실에서 온갖 종류의 분별을 가능하게 한다. 이것을 여기서 펼쳐져서 굴러가는 힘[展轉力]이라한 것이다. 마음작동이란 경험내용이 저장되는 과정과 저장된 정보가 다시 표층수준으로 표출되는 과정을 말한다. 이것이 바로 ‘인식’의 활동이다. 인식은 단순하게 현재를 경험하는 것은 아니다. 인식은 과거의 정보를 기초로 하여 새롭게 해석한다. 인식의 주체와 객체는 일차적인 분별이다. 이것의 본질은 바로 의식이다. 의식은 주객으로 분열되면서 경험내용을 포착하고 그 영상을 아뢰야식에 저장한다. 저장된 종자들은 현재의 경험내용을 존재하는 그대로 수용하거나 바라보지 못하고, 멋대로 그것을 왜곡하여 고통을 발생시키는 역할도 한다.
인경 스님 동방대학원대 명상치료학 교수
출처 법보신문 978호 [2008년 12월 16일 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