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동기론이 맞나 결과론이 맞나
부처님이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실 때의 일이다. 어느 날 부처님은 비구들에게 인과응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사람이 고의로 업을 지으면 현세나 후세에 반드시 과보를 받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고의로 지은 업이 아니라면 반드시 과보를 받는다고 나는 말하지 않는다. 고의로 짓는 업에는 세 가지가 있다. 신구의(身口意) 삼업이 그것이다.
고의를 가지고 몸으로 짓는 업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산목숨을 죽이는 것이니 중생에서 곤충까지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서 목숨을 해치고 피를 마시는 것이다. 둘째는 훔치는 것이니 남의 재물에 탐착하여 주지 않는 물건을 갖는 것이다. 셋째는 사음이니 부모 형제 자매의 보호를 받고 있는 여자나 남의 아내를 범하는 것이다.
고의를 가지고 말로써 짓는 업에는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거짓말하는 것이니 자기의 이익을 위해 모르면서도 안다고 하고, 못 보았으면서도 보았다고 하는 것이다. 둘째는 이간질하는 말이니 이 사람에게 이말 하고 저 사람에게 저말 하여 합친 것을 갈라서게 하고 파탄나게 하는 것이다. 셋째는 욕설이니 귀에 거슬려 듣기 거북하고 남을 괴롭히는 말을 하는 것이다. 넷째는 꾸미는 말이니 비위를 맞추기 위해 꾸짖거나 가르치지 않고 진실하지 않고 이치에 닿지 않는 말을 하는 것이다.
고의를 가지고 생각으로 짓는 업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탐욕이니 나의 재물과 생활도구를 늘 엿보고 자기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둘째는 노여워하는 것이니 마음속으로 누구를 미워하여 죽이고 속박하고 체포하고 고통을 주겠다는 생각을 품는 것이다. 셋째는 바르지 않은 견해를 갖는 것이니 선악도 없고 인과도 없으며 보시나 재(齋)의 공덕도 없으며 깨달음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부처님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씀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남을 사랑하는 마음(慈) 함께 슬퍼하는 마음(悲) 기쁨을 함께 하는 마음(喜) 편견 없이 공평한 마음(捨)으로 행동한다면 그는 몸과 말과 생각으로 나쁜 업을 짓지 않을 것이다. 그대들이 알아야 할 것은 업이란 이 몸을 따라 저 세상에 가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을 따라 저 세상에 간다는 것이다. 따라서 비구는 '나는 과거에 악업을 지었으니 그 과보를 후세가 아닌 현세에서 받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야 한다. 이렇게 닦으면 그는 반드시 아나함과(阿那含果)나 그보다 나은 과보를 얻을 것이다.
-중아함 3권 15경 <사경(思經)>
윤리학의 오래된 주제 가운데 하나는 동기론과 결과론이다. 어떤 행위의 선악을 판단하는데 동기를 더 중시할 것이냐 결과를 더 중시할 것이냐 하는 것은 오래 전부터 중요한 토론의 주제가 되어 왔다. 이 문제는 사람에게 형벌을 가하는 형법에서도 중요한 논쟁점이 되고 있다. 동기를 중시한다면 어떤 결과가 없어도 처벌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반대로 결과를 중시한다면 고의가 있더라도 결과가 없으면 처벌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이 경은 이 문제에 대한 불교의 입장은 어떤 것인가를 주제로 다루고 있어서 주목된다. 한마디로 불교의 인과응보 원리는 결과론에 의하기보다는 동기론에 의해 작동된다고 할 수 있다. 즉 '행위의 고의성' 여부가 인과응보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인간의 모든 행위는 몸과 말과 생각으로 이루어진다. 이때 고의를 가지고 선악의 행하면 반드시 과보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의성이 없는 행위는 반드시 과보가 따른다고 보기 어렵다. 모든 행위가 결과에 의해서만 인과를 결정한다면 인과론은 하나의 결정론이 된다. 결정론이란 과거의 어떤 행위가 미래의 어떤 행위를 하도록 결과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인과론에는 인간의 의지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 그것은 일종의 숙명론이기도 한다. 인간의 의지가 개입되지 않는 행위는 인간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
불교에서 인과응보는 어디까지나 의지적 행위가 있어야 성립된다. 고의성이 없는 행위까지 인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업은 몸이 아니라 마음을 따라간다'는 언급은 이를 뒷받침하는 말씀이다. 왜 '착한 마음'으로 자비희사를 행하여야 하는가. 업보는 마음을 따라 가는 까닭이다. 왜 악한 마음으로 나쁜 짓을 하면 안되는가, 업보는 마음을 따라가는 까닭이다.
출처 홍사성의 불교사랑 http://cafe.daum.net/hongsas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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