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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경 스님의 선문답 산책] ⑭ 일과 명상

slowdream 2009. 7. 3. 03:47

[인경 스님의 선문답 산책] ⑭ 일과 명상
시대적 요구, 수행에 반영하는 노력 필요
기사등록일 [2009년 06월 30일 10:13 화요일]

 

 

백장화상은 매일 울력하면, 반드시 남보다 먼저 나섰다. 하지만 나이 드신 선사를 생각하여 제자들이 연장을 숨기고 쉬기를 간청하였다. 이때에 선사는 “내게 아무런 덕이 없는데, 어찌 남들만 수고롭게 하겠는가?” 하면서, 여기저기 연장을 찾다가 농사를 짓는 연장을 찾지 못하면, 그 날 공양을 하지 않았다. 이런 일로 말미암아 “하루를 일하지 않으면 하루를 먹지 않는다”는 말이 천하에 퍼졌다.

 

 


 

이것은 『조당집』에서 전하는, “하루를 일하지 않으면(一日不作) 하루를 먹지 않는다(一日不食)”는 백장화상(720~814)의 일화이다. 이것이 갖는 역사적인 의미는 백장 스스로도 짐작을 못할 만큼 엄청난 것이었다.

 

우선 첫째는 계율의 해석문제이다. 비구계율에는 ‘땅을 파지 말라’는 조항이 있기에, 승려가 생산에 관여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사건이다. 땅을 파지 말라고 하는 것은 벌레나 곤충들을 다치게 하거나, 보다 넓은 의미는 생태계를 파괴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도에서는 전통적으로 승가는 생산적인 일에 관여하지 않고, 탁발로 생계문제를 해결하였다.

 

하지만, 백장은 적극적으로 농사일에 참여함으로써 승가의 경제적인 문제를 타결하려 했다. 이것은 탁발문화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켜서, 승단을 일정한 지역에 정착시키는 중요한 역사적인 사건이다. 동북아시아의 환경이 만들어낸 필연적인 변화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율의 적용문제와 관련된 논쟁거리를 만들었다.

 

둘째는 백장청규의 확립이다. 선종의 초기단계에서는 율종사찰에서 동거하는 형식을 취했지만, 스스로 경작하는 백장시대의 선종은 독립적인 공간을 확보하고 독자적인 경제적 여건을 마련하게 되었다. 그럼으로써 선종의 승단은 일정한 지역에 머물면서, 독립된 수행공동체를 이루게 되었고, 그 결과로 승가의 조직과 직제를 마련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백장청규이다.  계율에서 보면 문제가 되는 농사짓는 일을 하위 개념인 청규에서 새롭게 규정함으로써, 계율과의 모순을 해소시킨 것이다.

 

셋째는 승가와 사회와의 관계문제이다. 백장시대에는 경제적인 기반이 철저하게 농사를 짓는 일이었다. 승가가 농사를 짓는 행위는 사회적인 관점에서 보면, 일반 경제적인 체계와 조화를 이룬다. 실제로 백장화상이 입적하고 30년이 지난 이후에 불교에 대한 탄압이 시작된 회창법란이 발생되었다. 법란을 주도한 무종은 ‘한 사람이 농사일을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굶게 된다’고 칙령을 내려 종교를 탄압하게 되는데, 불교의 경우도 수많은 승려들이 강제로 환속 당하고 절들은 파괴되었다. 이런 외적인 탄압에서 선종은 스스로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관계로 큰 타격을 입지 않고 계속적으로 발전할 수가 있었다.

 

넷째는 일상성의 구체적 실현이다. 마조의 선종은 ‘평상심이 그대로 도이다’고 말한다. 농경사회에서 평상심이란 심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매우 구체적인 생활의 문제, 곧 농사짓는 일이다. 농사를 짓는 행위를 통해서 그 자체로 수행의 한 과정이 된 것이다. 사원경제나 역사적인 의미보다는 백장의 울력은 명상수행의 일부로서 의미가 크다.

 

인도적인 전통에서는 승가가 사회적인 혹은 경제문제에 일정한 거리를 두었지만, 백장의 선종은 생산적인 일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 동시에 명상수행이라는 본래의 목적을 이루었다. 이점은 매우 이상적인 방식이다. 오늘날 수행과 조화를 이룬 농경사회는 완전하게 후퇴하고, 이제 산업화와 고도의 정보화 사회 속에서 승가는 생활 속에서의 명상수행, 사회적인 생태문제나 승가의 경제적인 문제 등을 어떻게 해결해야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과제를 안고 있다.

 

사실상 울력은 형식만 남아 있고, 실질적인 사원경제는 많은 부분이 단월의 시주에 의지하고 있다. 이점은 현대 선종이 나아갈 방향을 검토할 때에 가장 먼저 다루어야할 중요한 과제 가운데 하나이다.

 

인경 스님 동방대학원대 명상치료학 교수


출처 법보신문 1004호 [2009년 06월 30일 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