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상화상이 말했다. “그대는 백 척의 장대 끝에서 어떻게 한 걸음 나아갈 수 있겠느가 ?” 또 옛 사람이 말하였다. “백 척의 장대 끝에 앉아있는 사람이라면 설사 불법에 득입하여도 아직 체득한 것은 아니다. 백 척의 장대 끝에서 한 걸음 나아가 시방 세계에 온 몸을 드러내야 한다.”
백 척의 장대 끝에서 한 걸음 나아가다,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 이 구절은 선가에 매우 오래된 언구이다. 여기서의 과제는 ‘백 척의 장대 끝’과 ‘한 걸음 나아감’이란 어떤 의미를 말하는 것일까? 하는 점이다.
누구든지 한번은 보았을 것이다. 우리가 어릴 때 마을 어귀에서 푸른 하늘을 가르고 선 장대, 그곳에는 깃발이 펄럭인다. 혹은 티베트를 여행하고 온 사람들이 보여준 사진에서도 많은 깃발을 볼 수 있다. 황량한 사막과 같은 고산지대에 장대가 하늘 높이 서 있고, 그곳 맑게 푸른 하늘에는 수 많은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절의 입구에는 장대를 세워 둔다. 이곳은 사찰의 영역임을 표시할 목적이다. 이곳은 신성하고 거룩한 땅이다. 그러니 이곳에 들어오는 자는 지적인 개념을 버려라. 이 땅을 더럽히지 말라. 이런 뜻이 장대에는 있지 않는가? 장대는 이 마을과 저 마을을 구분하는 경계선이고, 종교적으로는 성스러움을 표시하는 깃발이다.
명상수행에서 장대 끝은 어떤 상징일까? 이것은 높은 고원한 경지를 말한다. 고원한 경지란 산란하고 불안하고 우울한 마음이 사라진 고요하고 맑은 영적인 체험을 말한다. 더욱 정확하게 말하면 높은 선정의 경험이다.
마음에 산란함이 없고, 맑고 청정한 상태의 경험이다. 이것은 결코 쉽지 않는 경험이다. 그리고 아무나 경험하는 선정도 아니다. 많은 노력과 정진의 결과이다. 그렇지만 여기서도 한 걸음 나아가야 한다는 말이다.
여기에 좋은 사례가 있다. 대혜종고는 36세에 원오극근 화상을 만났다. 원오근극의 법문을 듣는 그 순간에 맑고 맑은 청정한 마음, 영적 체험을 하였다. 나중에 대혜종고는 자신의 체험을 원오극근 화상에게 말하였다. 그러자 화상은 그런 경험을 한 대혜를 칭찬하면서도, 한 걸음 더 나아가길 요구하였다. 아직도 한 가지가 부족하다는 말이다. 부족한 이 한 가지는 무엇일까? 이것은 바로 깨달음이다. 선정에 기반한 활발발한 지혜가 요청된다.
선정은 특정한 대상에 충분하게 집중되어 있는 상태를 말한다.
그러나 일상의 삶은 끊임없이 그 대상이 변화된다. 급박한 일상에서도 흔들림이 없는 삼매로서 깨달음이 필요하다. 특정 대상에 묶여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부동의 선정과 함께 활발하게 깨어있음이 동시에 요구된다. 시방 세계 속에서 자신의 온 몸을 드러내는 것이 바로 한 걸음을 나아가는 자리이다. 이곳은 경계가 없다. 이 마을과 저 마을의 경계선이 없고, 이쪽은 거룩하고 신성한 자리이며, 저쪽은 세속적인 자리라는 구별이 있을 수 없다.
백 척의 장대 끝에서 한 걸음을 나아가면, 온 세상이 그대로 옳다. 선악의 구분에서 벗어난다. 가는 곳마다 주인이고, 걸음걸음이 그대로 삼매를 이룬다. 생로병사가 그대로 부족함이 없는 원만하게 완결된 진여이다. 그러니 한 걸음 내밀면 마을 앞으로 길다란 강물이 흘러간다.
인경 스님 동방대학원대 명상치료학 교수
출처 법보신문 1067호 [2010년 10월 11일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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