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 .경청의 미혹 〈끝〉
- 이름 붙이는 행위 자체가 문화적 규칙
언어로 진실 드러낸다는 것은 불가능- 2010.12.28 15:40 입력 발행호수 : 1078 호 / 발행일 : 2010년 12월 29일
경청화상이 어떤 승려에게 물었다. “문밖에 무슨 소리가 나느냐?” “빗방울 소리입니다.” “중생이 전도하여 자기를 미혹하고 외물을 좇는군.” “무슨 말이죠?” “잘못하면 자기를 미혹할 뻔했어.” “그게 무슨 말이죠?” “몸을 빠져나오긴 그래도 쉽지만, 그것을 말하기란 어렵다.”
경청(鏡淸)화상은 “문밖에 무슨 소리가 나느냐?” 물었고, 그 승려는 “빗방울 소리입니다.”고 말했다. 그러자 경청화상은 다시 “중생이 자기를 미혹하고 밖의 물건을 좇는다”고 말한다.
실제로 귀를 기울려보면 빗방울 소리가 밖에서 들린다. 이 말은 틀린 말은 아니다. 왜냐면 실제로 밖에서 비가 오기 때문이다. 비가 오고 그 소리를 빗방울 소리라고 이름 붙이는 것은 문화적 언어규칙이다. 대상을 기술하는 언어로서 의사소통에 도움을 준다. 그러나 여기서는 소통이 서로가 되지 않는다. 일상에서 말하는 언어적인 기술은 미혹이고, 밖의 사물에 끌려가는 것에 불과하다. 한 사람은 관습적인 규칙을 따르고, 다른 사람은 궁극적인 마음자리에 앉아있다. 서로 다른 좌표에 앉아 있다. 그래서 소통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좀 더 친절하게 말한다면, 빗방울 소리를 언어적으로 분별하지 말고, 그냥 그대로 들어보게. 빗방울이란 판단을 멈추고 그 자체로 들어보게. 그곳에 어떤 분별이 있는가? 어떤 분별도 없는 그곳은 어떠한가? “하늘과 땅 사이에 오직 빗방울 소리만 존재합니다. 빗방울 소리가 천지를 삼켜버렸군요.” 이런 대답은 아까보다는 조금 나아진 것이다.
그런데 그 승려는 어리둥절하여 묻는다. “그게 무슨 말이죠?” 정확하게 말하면, 이것은 이렇다. 제가 미혹하여 사물에 끌려갔다는 것이죠? 그렇지만, 저것은 빗방울 소리가 아닌가요? 그러자 경청화상은 “잘못하면 자기를 미혹할 뻔 했다”고 말한다. 이런 경우는 어떻게 이해할 수가 있을까? 학인스님이 미혹한 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경청화상은 어떻게 자기를 미혹했다는 것일까? 경청화상의 경우도 학인의 대답에 대해서 언어적인 분별을 한 것이다. 중생, 미혹, 밖의 사물 등은 모두 언어적 규칙을 구성하는 낱말들이다. 이것은 판단이고, 분별이다. 그러니 경청화상의 경우도 빗속에서 미끄러지신 것이다. 그러나 화상께서는 금방 깨닫고 “하마터면 미혹할 뻔 했다”고 대답을 한다. 이것은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고, 학인을 대접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다른 별에 살고 있는 학인스님은 다시 묻는다. “자신을 미혹할 뻔 했다는 말이 무슨 뜻인가요?” 그게 무슨 뜻이죠. 그러자 “경청화상은 몸은 빠져나오긴 쉬워도 그것을 말하기란 어렵다.” 그렇다. 들켜버렸다. 말을 하는 순간에 곧 어긋나게 되니까. 설사 말을 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다시 진실을 은폐하게 된다. 말을 해서 몸은 빠져나올 수가 있지만, 진실은 그곳에 없다. 그러니 결과적으로 진실은 말할 수가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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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말하는 진실은 무엇일까? 이 공안에 대한 설두화상의 게송은 참 참신하다. “빈 집의 빗방울 소리여. 선지식도 대답하기 어려워라. 설사 성인의 흐름에 들어선다고 해도 여전히 말하기 어려워라. 알건 모르건, 남산과 북산에 세찬 비가 쏟아진다.” 이렇게 진실은 충분하게 드러나 있으니, 이것으로 만족스럽지 않는가? 이 빗소리는 모양과 형상으로 그림 그릴 수가 없다. 이것을 알려고 하면 더욱 멀어진다. 그러니 이것으로 연재를 마치자. 그동안 거친 글을 읽어주신 독자님에게 감사드리고, 부족한 저에게 지면을 할애해 주신 법보신문사에 감사드린다.
인경 스님 동방대학원대 명상치료학 교수
출처 법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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