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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답산책> 83. 조주의 지극한 도

slowdream 2010. 12. 27. 00:19
83. 조주의 지극한 도
 
어느 선택이든 반드시 개입되는 것이 언어
“지극한 도는 단지 간택하지 않으면 된다”
 
출처 법보신문 / 2010.12.14 19:10 입력 발행호수 : 1076 호 / 발행일 : 2010년 12월 15일
 

어떤 스님이 조주화상에게 물었다.

“지극한 도는 쉽다. 단지 간택을 그만두면 될 뿐이라고 하는데, 말하기만 하면 곧 그것이 간택인데,

 어떻게 화상께서 사람을 지도합니까?”
“왜 다 인용하지 않는가?”
“제가 여기까지 밖에 못 외웁니다.”
그러자 조주화상이 “이 지극한 도는 어려울 것이 없고, 단지 간택을 하지 않으면 된다”고 말했다.

 


 

‘지극한 도는 쉽다. 단지 간택을 하지 않으면 된다. 애증이 없으면 통연 명백하리라(至道無難 唯嫌揀擇 但莫憎愛 洞然明白).’


이것은 ‘신심명’의 첫 번째 구절이다. 간택이란 가리고 선택하여 뽑는다는 것을 의미이다. 선택하고 뽑을 때는 반드시 애증이 개입된다. 우리는 즐겁고, 좋은 느낌에는 탐착하는 마음이 발생되고, 반대로 괴롭게 불쾌한 느낌에는 적의와 혐오하는 마음이 일어난다. 갈망, 애착에 의해서 우리는 일상에서 끊임없이 선택을 하게 된다. 이러한 선택은 우리에게 희망을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큼직한 고통을 안겨주기도 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무엇인가를 선택할 때는 그곳에 반드시 개입되는 것이 언어, 말이다. 그래서 위에서도 말을 하면 곧 간택이 된다고 한 것이다. 예를 들면 ‘저 사람은 매우 훌륭해.’ 혹은 ‘나는 별 볼 일 없어.’ 이런 판단들은 결국은 언어적인 사유방식이다. 언어란 곧 대상을 선택하는 기능을 가진다. 이것과 저것을 구별한다. 나라는 용어는 저 사람과 다름의 차이를 상정하고 이것은 결국은 간택의 의미가 된다. 언어적인 의미란 결국은 이것과 저것의 차별을 제공한다. 그러니 말을 하면 간택, 곧 차별을 낳게 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말을 사용하지 않고는 교화를 할 수가 없지 않는가? 그래서 조주화상에게 이 점을 묻게 된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조주화상의 교화방식을 경험할 수가 있는 좋은 기회이다. 조주화상이 “왜 다 인용하지 않는가?”라고 묻자, “여기까지 밖에 외우지 못합니다”고 대답한다. 그러자 조주화상은 재미있게도 다시 “지극한 도는 쉽다. 단지 간택을 하지 않으면 된다”는 구절을 다시 인용한다. 여기까지 밖에 외우지 못함은 역시 간택이다. 이것은 선택이다. 외운 부분과 외우지 못한 부분을 간택하는 것이고, 그 차별을 분명하게 금을 긋는 것이고, 애증이 나타난 부분이다. 그러니 ‘지극한 도는 단지 간택을 싫어할 뿐이라’는 가르침을 구체적으로 다시 제시한 결과이다. 질문한 사람의 분상에 딱 맞게 가르침을 준 것이다.


그러니 명백함은 분명하게 드러났다. 이 명백함은 ‘물로 씻을 수가 없고, 바람에 날려 보낼 수가 없다.’ 어떤 모양과 형상에서 벗어난 명백함이기에 물로 씻을 수가 없고, 바람이 불지만 날려가지 않는다. 흐르는 냇물을 뚫지만, 햇살은 흔적도 남기지를 않는다. 명백함이란 이런 종류의 것이다. 이곳에는 애증이 없다. 즐거운 느낌과 불쾌한 느낌에서 깨어난 청정함이다.


▲인경 스님
이런 종류의 청정함은 어떤 종교적인 교설로도 설명하지 못하고, 사회적인 신분에 의해서 억압할 수가 없고, 심리적인 해설로서도 접근할 수가 없다. 오직 그 자체로 드러날 뿐이고, 간택이 멈추면서 체험될 뿐이다. 이것을 언어로서 전할 수가 없다. 앎으로 해명할 수가 없다. 이런 시도가 모두 부질없고, 더욱 멀어질 뿐이다. 부처님도 전하지 못했고, 조주화상도 알지 못했고, 설두화상도 이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그러니 이제 우리도 이 꼭두각시를 그만 멈추자. 


인경 스님 동방대학원대 명상치료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