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경전/디까니까야

연기의 심오한 원리

slowdream 2022. 8. 18. 00:02

연기의 심오한 원리

 

존자 아난다가 세존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이 조건적 발생의 법칙인 연기가 얼마나 깊고 얼마나 심오하게 출현하는지 아주 놀라운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예전에 없었던 일입니다. 그러나 저에겐 아주 명백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난다여, 그렇게 말하지 말라. 아난다여, 그렇게 말하지 말라. 이 조건적 발생의 법칙인 연기는 깊고 심오하게 출현한다. 아난다여, 이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꿰뚫어 보지 못하면, 이와 같이 이 삶들은 실타래에 묶인 것과 같이, 마름병에 덮인 것과 같이, 문자 풀에 엉킨 것 같이 괴로운 곳, 나쁜 곳, 비참한 곳, 지옥의 윤회를 벗어날 수 없다.”

 

...이와 같이 아난다여, 명색을 조건으로 의식이 있고, 의식을 조건으로 명색이 생겨나고, 명색을 조건으로 접촉이 생겨나고, 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생겨나고,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생겨나고, 갈애를 조건으로 집착이 생겨나고, 집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생겨나고,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생겨나고,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과 죽음, 슬픔과 비탄, 고통, 고뇌, 좌절이 생겨난다. 이 모든 괴로움의 다발들은 이와 같이 해서 생겨난다...

 

*<대인연경>에서는 12연기와 달리 ‘무명-행’ ‘6입처’가 빠져 있다. 특히 6입처는 전승과정에서의 단순탈락인지 의도적 배제인지는 몰라도 의미상 큰 혼돈은 없다고 봐야겠다. 물론 주석서에는 다양한 해석이 주어져 있다.

 

 

식과 명색

 

...“아난다여, 의식이 모태에 들지 않았는데도 명색이 모태에 응결될 수 있겠는가?”

“세존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아난다여, 의식이 모태에 들었으나 빗나갔다면, 그래도 명색이 이러한 상태로 태어날 수 있겠는가?”

“세존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아난다여, 의식이 명색에 확립되지 않는다면, 그렇더라도 미래에 태어나고 늙고 죽는 괴로움의 발생과 생성이 시설될 수 있겠는가?”

“세존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아난다여, 참으로 명색이 의식과 함께 서로 조건이 되는 경우, 이와 같이 해서 태어나서, 늙거나, 죽거나, 사멸하거나 다시 태어난다. 이와 같이 해서 명칭의 길이 전개되고, 어원의 길이 전개되고, 표현의 길이 전개되고, 지혜의 영역이 전개된다. 이와 같이 해서 유전하는 존재의 상태가 시설되기 위해 전개된다.”

 

 

7가지 의식의 주처와 2가지 처소

 

“아난다여, 일곱 가지 의식의 주처가 있고 두 가지 처소가 있다. 일곱 가지란 무엇인가?

아난다여, 신체의 다양성과 인지의 다양성을 지닌 뭇삶들이 있다. 예를 들어 인간들과 어떤 신들과 어떤 나쁜 곳에 떨어진 존재들이다. 그것이 첫 번째 의식의 주처이다.

아난다여, 신체의 다양성을 지녔지만 인지의 통일성을 지닌 뭇삶들이 있다. 예를 들어 첫 번째 선정을 통해 태어난 하느님 세계의 권속인 신들이다. 이것이 두 번째 의식의 주처이다.

아난다여, 신체의 통일성을 지녔지만 인지의 다양성을 지닌 뭇삶들이 있다. 예를 들어 하느님 세계의 빛이 흐르는 신들이다. 이것이 세 번째 의식의 주처이다.

아난다여, 신체의 통일성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인지의 통일성을 지닌 뭇삶들이 있다. 예를 들어 하느님 세계의 영광으로 충만한 신들이다. 이것이 네 번째 의식의 주처이다.

아난다여...‘공간이 무한하다’라는 무한공간의 세계에 도달한 뭇삶들이 있다. 이것이 다섯 번째 의식의 주처이다.

아난다여...‘의식이 무한하다’라는 무한의식의 세계에 도달한 뭇삶들이 있다. 이것이 여섯 번째 의식의 주처이다.

아난다여...‘아무 것도 없다’라는 아무것도 없는 세계에 도달한 뭇삶들이 있다. 이것이 일곱 번째 의식의 주처이다.

그리고 처소에는 인지를 여읜 뭇삶들의 처소와, 인지하는 것도 아니고 인지하지 않는 것도 아닌 처소가 있다.

 

 

혜해탈

 

...이와 같이 아난다여, 수행승은 이러한 일곱 가지 주처와 이러한 두 가지 처소에 대하여 분명히 알고, 그것의 발생에 관하여 분명히 알고, 그것의 소멸에 관하여 분명히 알고, 그것의 유혹에 대하여 분명히 알고, 그것의 재난에 관하여 분명히 알고, 그것의 여읨에 대하여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아서 집착없이 해탈한다. 그래서 아난다여, 그 수행승은 지혜에 의한 해탈을 이룬 자라고 불린다.

 

 

8해탈

 

...아난다여 이와 같이 여덟 가지 해탈이 있다. 여덟 가지란 어떠한 것인가?

색깔을 지닌 자로서 색깔들을 본다. 이것이 첫 번째 해탈이다.

안으로 색깔에 대한 인지를 여의고 밖으로 색깔들을 본다. 이것이 두 번째 해탈이다.

오로지 아름다운 것에만 전념한다. 이것이 세 번째 해탈이다.

...‘공간이 무한하다’라고 알아차리며 무한공간의 세계를 성취한다. 이것이 네 번째 해탈이다.

...‘의식이 무한하다’라고 알아차리며 무한의식의 세계를 성취한다. 이것이 다섯 번째 해탈이다.

...‘아무것도 없다’라고 알아차리며 아무것도 없는 세계를 성취한다. 이것이 여섯 번째 해탈이다.

...‘인지하는 것도 아니고 인지하지 않는 것도 아닌 세계’를 성취한다. 이것이 일곱 번째 해탈이다.

...‘인지와 느낌의 소멸’을 성취한다. 이것이 여덟 번째 해탈이다.

 

 

양면해탈

 

아난다여, 수행승은 이러한 여덟 가지 해탈을 그가 원할 때마다, 그가 원하는 곳마다, 그가 원하는 한, 순차적으로 들기도 하고 역차적으로 들기도 하고, 순역으로 들기도 하고 들어가기도 하고 나오기도 한다.

아난다여, 그는 현세에서 번뇌를 부수어 번뇌를 여읜 마음에 의한 해탈과 지혜에 의한 해탈을 스스로 곧바로 알고 깨달아 성취한다. 그러므로 아난다여, 이러한 수행승을 양면에 의한 해탈을 이룬 님이라고 한다. 아난다여, 이러한 양면에 의한 해탈보다도 더욱 수승하고 탁월한 다른 것은 없다.”

 

디까 니까야 <대인연경>

 

*번역 출처 - 전재성 박사 <신들과 인간의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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