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번뇌의 경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수행승들이여, 나는 번뇌의 소멸에 대한 앎과 봄이 없어서가 아니라, 번뇌의 소멸에 대해 잘 알고 또한 보기 때문에 말한다. 수행승들이여, 어떻게 번뇌의 소멸에 관해 잘 알고 또한 보는가? 이치에 맞게 정신을 쓰는 것과 이치에 맞지 않게 정신을 쓰는 것이 있는데, 수행승들이여, 이치에 맞지 않게 정신을 쓰면 아직 생겨나지 않은 번뇌가 생겨나고 생겨난 번뇌는 더욱 증가한다. 그러나 이치에 맞게 정신을 쓰면 아직 생겨나지 않은 번뇌는 생겨나지 않고 이미 생겨난 번뇌는 끊어진다.
수행승들이여, 관찰에 의해 끊어지는 번뇌가 있고, 수호에 의해 끊어지는 번뇌가 있고, 인내에 의해 끊어지는 번뇌가 있고, 수용에 의해 끊어지는 번뇌가 있고, 피함에 의해 끊어지는 번뇌가 있고, 제거에 의해 끊어지는 번뇌가 있고, 수행에 의해 사라지는 번뇌가 있다.
관찰에 의해 끊어지는 번뇌
수행승들이여, 관찰에 의해 끊어져야 하는 번뇌란 무엇인가? 이 세상에 배우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은 거룩한 이를 인정하지 않고, 거룩한 가르침을 알지 못하고, 거룩한 가르침에 이끌리지 않고, 참사람을 인정하지 않고, 참사람을 알지 못하고, 참사람에 이끌리지 않는다...
수행승들이여, 어떠한 것들에 정신을 쓰면 아직 생겨나지 않은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의 번뇌가 생겨나지 않고, 이미 생겨난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의 번뇌가 끊어지고, 아직 생겨나지 않은 존재의 번뇌가 생겨나지 않고, 이미 생겨난 존재의 번뇌가 끊어지고, 아직 생겨나지 않은 무명의 번뇌가 생겨나지 않고, 이미 생겨난 무명의 번뇌가 끊어지는 것이 있다면, 그것들은 정신을 쓰고 있지 않지만 정신을 써야 할 것들이다...
그는 이와 같이 이치에 맞지 않게 정신을 쓴다. ‘나는 과거세에 있었을까? 나는 과거세에 없었을까? 나는 과거세에 무엇이었을까? 나는 과거세에 어떻게 지냈을까? 나는 과거세에 무엇이었다가 무엇으로 변했을까? 나는 미래세에 있을까? 나는 미래세에 없을까? 나는 미래세에 무엇이 될까? 나는 미래세에 어떻게 지낼까? 나는 미래세에 무엇이 되어 무엇으로 변할까?’ 또는 현세에 이것에 대해 의심한다. ‘나는 있는가? 나는 없는가? 나는 무엇인가? 나는 어떻게 있는가? 이 존재는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이와 같이 이치에 맞지 않게 정신을 쓰면, 여섯 가지 견해 가운데 하나의 견해가 생겨난다. 나의 자아는 있다라는견해가 실제로 확고하게 생겨난다든가, 나의 자아는 없다라는...자아에 의해서 자아를 지각한다라는...무아에 의해서 자아를 지각한다라는...또는 이와 같이 ‘나의 이 자아는 말하고 느끼고 여기저기에서 선악의 행위에 대한 과보를 체험하는데, 그 나의 자아는 항상하고 항주하고 항존하는 것으로 변화하지 않고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라는 견해가 생겨난다. 수행승들이여, 이것을 견해의 심취, 견해의 정글, 견해의 험로, 견해의 왜곡, 견해의 몸부림, 견해의 결박이라고 부른다...
그는 이와 같이 ‘이것은 괴로움이다’라고 이치에 맞게 정신을 쓰고, ‘이것은 괴로움의 생성이다’라고...‘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이치에 맞게 정신을 쓴다. 이와 같이 이치에 맞게 정신을 씀으로써 3가지의 결박, 즉 존재의 실체가 있다는 환상, 매사의 의심, 미신과 터부에 대한 집착을 끊어버린다.
수호에 의해서 끊어져야 하는 번뇌
성찰에 의해 이치에 맞게 시각능력을 잘 다스려서 수호한다. 청각능력을...후각능력을...미각능력을...촉각능력을...정신능력을 잘 다스려서 수호한다.
수용에 의해서 끊어져야 하는 번뇌(기본적인 의복, 음식, 주거지, 필수약품)
인내에 의해서 끊어져야 하는 번뇌(더위와 추위, 벌레, 매도와 비방, 육체적 고통 등)
피함에 의해서 끊어져야 하는 번뇌(적당하지 않은 수행처, 악한 친구 등)
제거에 의해서 끊어져야 하는 번뇌(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의 사유, 분노의 사유, 폭력의 사유)
수행에 의해서 끊어져야 하는 번뇌(4념처 수행)
*번역 출처 전재성 박사 <명상수행의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