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쩰라 깟싸빠의 경
“존자 고따마여, 괴로움은 스스로 만든 것입니까?”
“깟싸빠여, 그렇지 않습니다.”
“존자 고따마여, 괴로움은 남이 만든 것입니까?”
“깟싸빠여, 그렇지 않습니다.”
“존자 고따마여, 괴로움은 스스로 만들기도 하고 남이 만들기도 하는 것입니까?”
“깟싸빠여, 그렇지 않습니다.”
“존자 고따마여, 괴로움은 스스로 만드는 것도 아니고 남이 만든 것도 아닌 원인 없이 생겨난 것입니까?”
“깟싸빠여,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세존 고따마께서는 괴로움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까?”
“깟싸빠여, 나는 참으로 괴로움을 압니다. 나는 참으로 괴로움을 봅니다.”
“깟싸빠여, ‘행위하는 자와 경험하는 자가 동일하다’면, 그것은 시작부터 존재하는 자와 관련하여 ‘괴로움은 스스로 만든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주장한다면, 그것은 영원주의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행위하는 자와 경험하는 자가 다르다’면, 괴로움을 당한 자와 관련하여 ‘괴로움은 다른 사람이 만든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주장한다면 허무주의에 해당합니다
깟싸빠여, 여래는 이러한 양극단을 떠나서 중도로 가르침을 설합니다. 무명을 조건으로 형성이 생겨나고...모든 괴로움의 다발들이 생겨납니다. 그러나 무명이 남김없이 소멸하면 형성이 소멸하고...모든 괴로움의 다발들이 소멸합니다.”
번역 출처 전재성 박사 <오늘 부처님께 묻는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