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란자의 경
이와 같이 바라문이여, 나는 무명에 빠진 계란의 존재와 같은 뭇삶들을 위하여, 둘러싸인 무명의 껍질을 깨고 홀로 세상에서 위없이 바르고 원만한 깨달음을 바르고 원만히 깨달았습니다. 바라문이여, 나는 참으로 손위고 세상의 최상자입니다.
바라문이여, 나는 열심히 노력하고 정진하여 권태로움이 없었고, 새김을 확립하여 미혹에 떨어지지 않았고 몸이 고요하여 격정이 없었고 마음은 집중되어 통일되었습니다.
바라문이여, 나는...첫번째 선정에...두번째 선정에...세번째 선정에...네번째 선정에 들었습니다,
이와 같이 맑아지고 청정해지고 더러움이 없고 번뇌가 사라져, 부드럽고 유연하고 확립되고 흔들림 없고 집중된 마음으로 나는 전생의 삶을 새기는 궁극적인 앎에 마음을 기울였습니다. 바라문이여, 나는 전생의 여러 가지 삶의 형태를 기억했습니다...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정진한 자에게 그렇듯이, 나에게 한밤의 초야에 첫 번째 밝음을 얻자 무명이 부서지고 명지가 생겨나고 어둠이 부서지고 광명이 생겨났습니다. 바라문이여, 이것이 병아리가 알껍질을 깨고 나오는 것과 같은 나의 첫 번째 깨고나옴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맑아지고 청정해지고 더러움이 없고 번뇌가 사라져, 부드럽고 유연하고 확립되고 흔들림 없고 집중된 마음으로 나는 뭇삶의 태어남과 죽음에 대한 궁극적인 앎에 마음을 기울였습니다. 바라문이여, 나는 청정하여 인간을 뛰어넘는 하늘눈으로 뭇삶들을 관찰하여 죽거나 다시 태어나거나 천하거나 귀하거나 아름답거나 추하거나 행복하거나 불행하거나 업보에 따른 뭇삶들에 관하여 분명히 알았습니다...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정진한 자에게 그렇듯이, 나에게 한밤의 중야에 두번째 밝음을 얻자 무명이 부서지고 명지가 생겨나고 어둠이 부서지고 광명이 생겨났습니다. 바라문이여, 이것이 병아리가 알껍질을 깨고 나오는 것과 같은 나의 두번째 깨고나옴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맑아지고 청정해지고 더러움이 없고 번뇌가 사라져, 부드럽고 유연하고 확립되고 흔들림 없고 집중된 마음으로 나는 번뇌의 부숨에 대한 궁극적인 앎에 마음을 기울였습니다. 나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고, ‘이것이 괴로움의 발생이다’라고 분명히 알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분명히 알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곧바로 알았습니다. 나는 ‘이것이 번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알고, ‘이것이 번뇌의 발생이다’라고 분명히 알고, ‘이것이 번뇌의 소멸이다’라고 분명히 알고, ‘이것이 번뇌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곧바로 알았습니다.
나는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아서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의 번뇌에서 마음을 해탈하고, 존재의 번뇌에서 마음을 해탈하고, 무명의 번뇌에서 마음을 해탈했습니다. 내가 해탈했을 때 ‘해탈되었다’라는 궁극적인 앎이 생겨났습니다. ‘태어남은 부서지고, 청정한 삶은 이루어지고, 해야 할 일은 마쳤으며, 다시는 태어나지 않는다’라고 곧바로 알았습니다.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정진한 자에게 그렇듯이, 나에게 한밤의 후야에 세번째 밝음을 얻자 무명이 부서지고 명지가 생겨나고 어둠이 부서지고 광명이 생겨났습니다. 바라문이여, 이것이 병아리가 알껍질을 깨고 나오는 것과 같은 나의 세번째 깨고나옴이었습니다.
*번역출처 전재성 박사 <생활속의 명상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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